인질의 유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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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6일「유럽」에서 동시에 4건의 여객기 납치사건이 있은 지 불과 3일만에 또 다시 영국의 민간여객기가「아랍」지공 대원들에 의해 납치됐다. 같은 날, 우리 나라 신문에는 역시 7일만에 또 다시 발생한, 다방을 무대로 한 인질소란사건이 보도되었다.
범죄의「패턴」은 시대나 사회를 따라 다르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서양의 스카이재킹과 한국의 다방 인질사건은 다같이 오늘의 병든 문명사회의 풍토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나의「센세이셔널」한 범죄「패턴」이 여러 개의 모방을 낳고 이어서 그것이 하나의 유행을 만들지 않을까 염려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뭣이나 다 그렇듯이 범죄사건에 있어서도 모방은 언제나「오리지널」한 것보다 추하고 타기 할만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상습화된 아랍인들의 민 항공기 납치도 그렇거니와, 이번에 목포에서 있었던 다방 인질사건 재탕도 물론 그 예외 알 수는 없다.
정치적인 목적에 의한 것이든, 개인적인 동기에 의한 것이든 재탕 삼 탕이 될수록 주연 자에 대한 그 나마의 동정도 희박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인질극이란 그들이 공통적으로 제일 큰 무기이자 방패로 삼고 있는 것이 인명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람을 볼모로 잡아두고 엉뚱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소위 인질 흥정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졌다.「줄리어스·시저」도 젊었을 때 해적들에게 인질로 잡힌 일이 있다. 중국에서도 인질에 읽힌 설화는 요순시대를 제외한 수 천년의 역사를 통한 권력 다툼 속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던 일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오히려 이를 조금도 범죄적이라고는 여기지 않았을 정도이다.
다만 오늘의 인질사건의 비정은 흔히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선의의 사람들을 피해자로 잡는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이것은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스카이재킹에 있어서나 우리의 다방 극에 있어서나 마찬가지다. 오늘의 시대가 그만큼 사람의 목숨을 업신여기는 풍조에 사로잡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인간경시의 이 절에 살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면 서글퍼지기만 한다.
역사적인 얘기지만, 만일에 사람의 목숨이 누구의 눈에나 값싸게 보인다면 애당초 인질사건은 일어나지도 않을지 모른다.
사람의 목숨이 귀하다는 생각이 아직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살아있기 때문에, 그나마 인명을 놓고 흥정을 하겠다는 생각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면 더욱 서글퍼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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