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진보는 반국가적 종북세력과 결별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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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언론에 공개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혁명조직(RO) 비밀회동 녹취록의 내용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와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을 치켜세우는 발언을 태연히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또 미국과 한국 정부를 ‘저놈들’이라 부른 반면 북한에 대해선 예찬 일변도였다. 강연 내내 북한식 표현을 쓰고 북한의 혁명가요를 불렀다 하니 그의 정체성이 잘 드러난 셈이다. 게다가 북한의 지하공작원들이나 쓰는 ‘바람처럼 사라지시라’는 말로 강연을 끝맺었다 하니 무슨 스파이 흉내라도 내려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도대체 그게 뼛속까지 평화주의자를 자처한 이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어차피 그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보고됐으니 여야는 신속히 처리해 사법 절차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가리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반드시 따져봐야 할 일이 있다. 이 의원과 같은 이들이 국고 보조를 받는 공당의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만든 책임 소재 말이다. 통진당을 지지해준 유권자들을 폄하하는 게 아니다. 그들 중 절대다수는 통진당의 종북 성향을 인지하지 못한 채 진보라는 가면에 홀려 표를 던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대착오적이고 반국가적인 종북세력에 정치적 공간을 넓혀준 게 누구였나. 무엇보다 지난해 총선에서 야권연대라는 미명하에 통진당과 손잡았던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민주당은 뒤늦었지만 국민 앞에서 통절한 반성을 하고 통진당과 단호한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하는 애매한 태도는 수권정당의 자세가 아니다. 당시 야권연대에 힘을 보탠 진보진영의 원로들 역시 막중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이 진정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라면 그에 걸맞게 처신해야 한다.

 민혁당 사건으로 유죄를 받았던 이 의원이 노무현정부 때 사면·복권된 경위도 복기해봐야 한다. 당시 청와대와 사법부 책임자 중 상당수가 민주당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다. 국민은 그들의 책임 있는 소명을 기다린다.

 현재 국민 세금으로 달콤한 혜택을 누리면서도 대한민국을 겨눈 칼날을 품고 다니는 이적세력이 얼마나 많은지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앞으로 이들이 제도권 정치에 재진입하지 못하도록 사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는 여전히 중요하고 필요한 가치다. 종북을 척결하자는 주장이 진보를 뿌리 뽑는 매카시즘으로 이어져선 절대 안 된다. 애초부터 이번 사건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니다. 진보의 가면 속에 숨은 반국가적 종북세력을 털어내면 될 사안이다. 종북과 선을 긋는 진보의 자성, 사법당국의 엄정한 수사는 그래서 꼭 필요하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어제 “낡고 위험한 시대착오적인 세력이 있다면 법에 의해 단죄돼야 하고, 정권의 위기 때마다 색깔론을 들이대 왔던 국가기관과 수구세력도 분명히 구별해내야 한다”고 했다. 설득력 있는 말이다.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법에 따라 처리하고, 이성에 따라 처신하는 게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