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방사능 안전보다 올림픽 유치가 중요한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일본 국회가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능 오염수 유출 문제에 대한 심의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이후로 늦추기로 했다고 한다. 7~1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IOC 총회를 앞두고 국회에서 오염수 문제의 심각성과 정부의 늑장 대응을 놓고 공방이 벌어지면 2020년 여름올림픽 유치에 차질을 빚을지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란 것이다. 중의원 경제산업위원회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금주 중 내놓기로 한 오염수 대책을 지켜본 뒤 이달 중순께 오염수 유출 문제를 논의하기로 일정을 조정했다. 일의 선후(先後)와 경중(輕重)을 모르는 안일하고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일 정치인들 눈에는 방사능 안전보다 올림픽 유치가 더 중요하단 말인가.

  오염수 유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다. 저장탱크 주변 4곳에서 또다시 고농도 방사능이 검출됐다. 지난달 300t의 오염수가 샌 것으로 확인된 저장탱크와 다른 곳이다. 탱크 하단 한 곳에선 시간당 1800밀리시버트(mSv)의 방사선이 측정됐다. 4시간 정도 노출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양이다. 저장탱크 인근 우물의 지하수를 검사한 결과 6개월 전과 비교해 삼중수소 농도가 최고 15배까지 치솟은 사실도 드러났다.

 방사능에 오염된 지하수의 해양 유출을 막기 위해 설치한 차단벽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하루 300t의 저농도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지만 도쿄전력은 속수무책이다. 저장탱크 문제는 더 심각하다. 냉각수로 사용된 고농도 오염수를 보관하기 위해 원전 주변에 약 1000개의 저장탱크를 설치했지만 그중 일부에서 오염수 유출이 확인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오염수 유출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해양 환경과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지금은 기한 내 오염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올림픽을 자진 반납하겠다는 배수진의 각오를 보일 타이밍이지 올림픽 유치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아베 정부는 오염수 유출 문제를 국가적 비상사태로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