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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외국인 학자를 찾아|한국어의 미로|형용사 숲에 도전|한·중 입성 자음 비교 연구|중국인 왕준 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67년8월 우리 나라 문교부의 초청 장학생으로 서울에 온 중국인 왕준씨가 오는 8월말 서울대학의 후기 졸업식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 한국에 온지 꼭 3년 만이다. 논문은 『한중 입성 자음의 비교 연구』.
상해 태생의 그는 대만의 국립 정치 대학 동방어 문학과에서 한국어를 전공했으며 거기서 1년간 조교로도 근무했었다.
『대만에서 한국어를 전공했지만 체계적인 공부를 못했읍니다. 처음에 서울에 왔을 때는 영어로 얘기했는데 6개월 지나서부터 조금씩 한국어를 말하기 시작했읍니다.』
68년3월 서울대 대학원 국어 국문학과에 들어가 「한국어 학을 전공한 그는 문법적인 지식은 물론이지만 일상 회화에서도 서울 본바닥 발음에 상당히 접근하고 있다.
『외국 사람으로서 한국어를 배우는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한국어 중에서 형용사는 더욱 발달돼 있어서 외국 사람이 잘 쓰지도 못하고 또 이해도 안됩니다. 의성어·의태어들은 참 어렵습니다. 가령 방글방글·벙긋벙긋·벙글벙글 등등은 외국 사람으로서는 느끼기는 하지만 도저히 그 웃는 모습을 이해 못합니다.』
그는 이렇게 얘기하면서 빙긋이 웃었다.
그는 서울대 대학원 출신의 「프랑스」인 「앙드레·파브르」씨가 쓴 『의성어·의태어의 연구』에 큰 재미를 붙였다고 한다. 특히 한국어의 형용사는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것 같다고 했다.
이숭령 교수를 지도 교수로, 이희승·이기문·강신항씨에게서 많은 지도를 받았다고 말하는 그는 이번 졸업 논문에서 『한국어 가운데 한자어의 용법과 한자음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을 비교·정리하여, 그 차이와 변천 경로를 구명하기 위해 이조의 입성 자음과 중국중고 입성 자음을 비교』했다.
중국어의 중고음과 광주음을 『동국정운』『훈몽자회』『화동정음통석운고』『삼운성휘』 『규장전운』에 나타난 이조음과 비교한 것이다.
중고음의 입성운미 (종성) k·t·p 가운데 t는 이들 운서중에서 「ㅭ」으로 표시하다가 뒤에 「ㄹ」로 변했다는 얘기다. 또 이조음과 광주음의 상의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가령 쇄는 중고음에서 「수앝」, 광주음에서「샅」, 이조음에서 「솰」(훈호에선 솨)인 것이다. 중국에서나 화교 사회에서 한국어 교재나 사전이 없기 때문에 체계적인 한국어의 습득과 연구가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그는 먼저 틈틈이 『현대 한어 어법』이란 문법책을 집필하고 있다. 오는 9월 까진 집필을 끝내고 출판할 의욕을 보인다.
3분의2 정도를 끝낸 그의 원고에는 「책 이야기」는 「챙 니야기」로 발음한다는 주의까지 적고 있을 만큼 정성들인 자취를 보이고 있다. 이 문법책 이외에도 「한중 사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건 혼자서는 안될 것 같이 생각된다』고 어려움을 말한다.
그는 자기의 문법책에서 한국 문교부가 가르치는 것과는 달리 「접속사」를 떼어내서 10품사를 주장하고 있으며, 「지정사와 재재사」의 절을 따로 소개하고 있다.
『한국의 어학자들 가운데 10품사를 주장하는 사람이 제일 많습니다. 안곽의 「조선문법」부터 이상춘, 이영철, 최현배, 이희승씨 등의 문법이 그렇습니다.』
『한국에 와서 공부하는 김에 박사 과정까지 끝내고 고향에 돌아갈 생각입니다.』
그가 세든 방 책상 위에는 부모와 세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이 함께 찍은 가족 사진이 눈을 끈다. 지난 겨울방학 때 대만에 돌아가 결혼하고 다시 왔다고 한다. 비자가 잘 안나와서 아내를 데려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어」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한글 전용」문제에도 자기의 이견을 털어놓는다.
『한자어가 외래어라고는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 자기의 음운 계통으로 발전시킨 이상 자국어로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한글학회」는 한자어가 한국어의 60%라고 조사 결과를 밝히고 있습니다. 순 한글을 사용하면 시간적으로 절약될 수 있지만 그것이 표음 문자니까 뜻은 쉽게 뛰어나오지 않습니다.』 <공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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