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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비서는 「꽃」이 아니다|그 역할과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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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글 사전에 나와 있는 비서라는 단어의 뜻을 보면 『특정인에게 직속되어 비밀한 문서나 용무를 맡아보는 직무, 또는 사람』이라고 적혀 있다. 이 풀이와 우리가 주위에서 보는 비서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고 더욱이 「여 비서」를 상대로 생각할 때는 그들의 역할에 어딘가 부족 되는 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서울직업여성클럽(서울 BPW)은 14일 서울 YWCA에서 「여 비서의 실태」에 관한 세미나를 갖고 현직 여비서들의 직무 담을 들었다.
금융 기관에서 3년 이상 비서 생활을 한 진명선씨는 여 비서로서의 기대되는 역할을 비밀보장, 보조원 내지 안내원으로서의 일, 필요한 정보 제공, 민첩한 행동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실제로 그들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손님의 접대나 전화보고, 사무실의 정리 등에서 그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외국인 상사에서 근무하는 박종복씨는 『하루의 일과가 상사의 그날 일정표 작성으로 시작해서 속기·전화 예약 등, 상사의 일거 일동을 파악해야만 한다』고 말해서 『지식보다 눈치가 중요한』여 비서와의 차이를 보여 주었다.
국내 기업체의 사장이나 관청의 장·차관급이면 거의 전부가 대학 졸업한 여 비서를 채용하고 있으며 하는 일들도 거의 비슷하다. 이들에게는 전문직으로 갖는 기능은 요구되지 않고 있으며 반드시 대학 교육을 필요로 하는 일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미국에 있는 「국제 비서 협회」가 미국 전 분야에 있는 2백26명의 여 비서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들의 92%가 『속기로 받아써서 편지나 보고서를 타이핑으로 작성』하고 있으며 82%가 상사의 일정표를 작성하고, 70%가 계산기를 사용하고, 45%는 회의까지 참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68년 이화여자대학교에 비서학과가 신설, 영문과 국문 속기, 타자 계산기와 동사기의 사용법 등을 필수 과목으로 지도하고 있으나 졸업 후 과연 이러한 실력을 활용할만한 직책이 주어질 것인가는 의문이다.
미국에서 발간되고 있는 잡지 「오늘날의 비서」가 발표한 「여비서 조건 8개 항목」을 보면 신속성·충심성·두뇌력·조직력·정확성·믿음성·재치·요령 등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용모 단정』이 첫번째 조건으로 되는 것은 사회의 인식 부족 내지 여 비서의 역할 한계가 뚜렷하지 못 한데에 그 이유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실정에 대해 이경희씨(서울 직업 여성 클럽 회장)는 『상사는 어디까지 시켜야할지를 모르고 있으며, 여 비서는 갖추어야 할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상사의 보좌관 역할』이 바람직한 여 비서의 일이라고 밝혔다.<이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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