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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할 때까지 기다려준 미국, 진도 나가기 급급했던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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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친아(공부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엄마 친구의 아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개룡남(열악한 환경에서 큰 사회적 성취를 이룬 남자, 즉 개천에서 용 난 경우)이 사라졌다는 지금, 혹시 부모 잘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이 시대 대표적인 엄친딸인 윤선주 EF코리아 한국 지사장과 신아영 SBS ESPN 아나운서를 보면 그런 삐딱한 시선이 대충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하다.

전·현직 경제부처 장관의 딸로, 둘 다 한국 부모가 가장 선망한다는 하버드대 출신이다. 부모의 비상한 머리를 물려받은 게 분명한 데다 아버지의 외국 생활로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혔으며, 그걸 발판으로 누구나 꿈꾸는 명문대학을 졸업했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과연 본인도 그렇게 생각할까. 이 두 엄친딸은 왜 하버드를 택했으며, 또 왜 한국으로 돌아왔을까. 누구누구의 딸, 혹은 하버드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지금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직접 만나 물었다.

미 유학 선택한 게 아니라 수학 못해 국내 대학 못간거죠
신제윤 금융위원장 딸 신아영 SBS ESPN 아나운서

신아영 아나운서는 2011년 가을 케이블방송 SBS ESPN에 합격하자마자 곧바로 화제의 인물이 됐다. 하버드대 출신이라는 화려한 학벌, 여기에 신제윤 기획재정부 1차관(현 금융위원장) 딸이라는 게 알려진 덕분이다. 궁금한 게 많았다. 하버드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재원이 스포츠 전문 케이블방송 아나운서가 된 걸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할까. 성공일까, 아닐까. 이게 원래 원하던 꿈이었을까. 그랬다면 굳이 왜 하버드에서 공부했을까. 아나운서를 비하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하버드 역사학 전공과 스포츠 아나운서,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자꾸 걸렸다.

1992년 미국 이타카에서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위). 축구선수 구자철과 함께 출연한 축구게임 `위닝 일레븐 온라인` CF의 한 장면(아래).

-외고 출신이다. 미국 대학을 간 이유가 뭔가.

 “원래 부모님이 나온 서울대나 이화여대를 가고 싶었다. 해외 명문대를 선택했다기보다 국내 대학 진학을 포기한 거다. 수학 때문이다. 수학 시험을 볼 때면 식은 잘 세워놓고 단순 계산에서 항상 틀렸다. 억울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했지만 별수 있나. 하지만 미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SAT(Scholastic Aptitude Test)는 수학문제 풀 때 계산기를 사용할 수 있다더라. 고2 여름방학 마친 후 유학반으로 옮겼다. 다른 친구들보다 준비가 늦은 편이었다.”

-늦었는데 하버드에 합격했다. 비결이 뭘까.

 “영어를 잘해서 유리했다. 어릴 때 아버지 따라 두 차례(5~7세, 8~10세) 미국에서 살았으니까. 또 한국 수업방식에 적응하지 못했던 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고교 시절 학교가 답답해 국회 인턴 등 교외 활동을 많이 했다. 미국 대학은 특별활동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런 것들이 더 잘 맞았다. 사실 초·중·고 내내 약간 문제아였다. 이른 아침부터 하는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 자기 일쑤였다. 엄마가 몇 차례 학교에 불려왔다.”

-어린 시절 미국에서 공부했던 경험 때문에 적응하는데 어려웠던건 아닐까.

 “단순 비교를 하자면 한국 학교는 공부를 많이 시키고 미국은 공부를 안 시킨다. 대신 운동을 많이 시켰던 것 같다. 한국보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짧았다. 또 한국에 돌아와서 공부해 보니 교사들의 참을성이라는 게 다르더라. 미국에서는 학생이 답을 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수업을 지도하면서 뒤처지는 학생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는다. ‘너는 이 부분에 대해 더 알아보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등의 세세한 조언도 해줬다. 한국에서는 이런 걸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하버드 분위기는 어땠나. 역사학 전공을 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하버드는 2학년 때 전공을 정한다. 1학년 때 니얼 퍼거슨 교수의 유럽 근대사 강의를 들었는데 너무 멋있더라. 특히 영국식 발음이 멋있었다. 그래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수업 따라가기는 정말 어려웠다. 읽고 쓰는 게 너무 많았다. 1학년 때는 아예 성적을 포기했고 2학년부터는 그저 따라가기 벅찼다. 그래서 졸업학점은 별로 안 좋다.”

-한국 대입 수험생 학습량도 만만치 않은데 그것보다 더 힘들다는 얘기인가.

 “한국에선 메모하고 암기하는 공부만 알았다. 미국에 가보니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정리한 걸 그저 읽는 건 공부가 아니더라. 내 생각을 정립해 의견을 내는 게 중요하다. 얼토당토않은 가설이라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만 있으면 된다. 한국은 다르다. 그냥 ‘이건 맞고 이건 틀리다’ ‘A는 A고, B는 B’라고 가르친다. 다들 공부를 재미없어 하는 건 그렇게 일률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철수와 영희가 각각 시속 5㎞와 7㎞로 뛰고 있다면 얼마 후 어디서 만날까’ 같은 문제가 제일 싫었다. 그게 궁금한가.”

-아나운서를 택한 게 의외다.

 “솔직히 대학원에 가고 싶었는데 전공을 살리기에는 머리가 안 따라줬다. 힘에 부쳤다. 학문 쪽으로 발전할 머리가 아니더라. 대신 재밌게 일할 수 있는 걸 찾아봤다. 그때 방송이 보였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신선한 발상으로 세상 통념을 뒤집는 게 매력적으로 보였다. 어떻게 준비해야 프로듀서(PD)나 아나운서가 되는지 몰랐다. 방송을 하고 싶어 찾아다니다 아나운서 학원을 다니게 됐고, 6개월 준비 끝에 합격했다.”

-아버지 인맥이 대단하다. 혹시 도움을 주지 않았나.

 “전혀. 어릴 때부터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뒀다. 특히 엄마는 철저하게 ‘나는 누구 엄마가 아니라 나’라고 강조했다. 딸을 위해 희생하는 게 한국 부모 스타일인데 우리 집은 그런 게 정말 없었다. 본인 인생을 즐기는 분들이다. 선을 딱 그었다. 3살 때부터 혼자 자고 혼자 씻었다. 공무원 중에 자녀 교육 스케줄에 맞춰 해외 연수를 가기도 하는데 우리 집은 그러지 않았다. 대학 학비도 빌려준 거라 졸업한 뒤 갚아야 했다. 대학 입학 후엔 용돈을 받은 적도 없다. 과외하고 한국 관광객 상대 가이드로 아르바이트해서 충당했다.”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응이 궁금하다. 좋아하셨나.

 “실은 붙고 나서 얘기했다. 아나운서 학원비도 내가 과외하고 통·번역 아르바이트 해서 모았다. 결과를 얘기하니 발칵 뒤집혔다. 아버지는 ‘네 인생이니 알아서 살아라’고는 했지만 아직도 인정을 안 하시려는 편이다.”

-하버드 간판, 누구누구 딸이라는 수식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학벌은 나의 일부분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걸 먼저 보지만. 때로 ‘쟤는 하버드 나와서 왜 이런 일을 해’라는 수군거림을 듣는다. 왜 대학이랑 직업을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 미국에는 하버드 출신 요리사도 많다.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우리나라처럼 어느 대학을 나오면 최소 어느 직업 이상은 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 한국에선 앞으로 무엇을 한들 하버드 꼬리표가 따라다닐 것 같다. 부담? 그렇게 말하면 배부른 소리다. 불평하면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기회였고 배운 것도 많다. 남들이 수긍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활동하는 수밖에 없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성공한 삶인가.

 “내가 재밌는 걸 하니까 만족스럽다. 물론 어떤 사람은 ‘하버드까지 나와서 케이블에서 왜 저러나’ 싶겠지. 그런 사람이 보기에 내 인생은 실패다. 하지만 나는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학생들이 틀을 깨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하지만 뭔가 어렵더라도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나랑 안 맞을 뿐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람마다 다 다르고 장단점도 뚜렷하고 틀에만 맞추다 보면 재능을 잃을 수 있다.”

한국 교육 익숙한 나, 하버드 가니 사고능력 떨어져 자괴감 느끼기도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딸 윤선주 EF코리아 한국 지사장

윤선주 EF코리아 한국 지사장은 보스턴컨설팅 컨설턴트·SBS 예능국 PD·하버드 로스쿨 출신 국제변호사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남들은 인생의 목표로 잡고 뛰는 종착역을 30대 중반의 나이에 벌써 서너 번 지나친 셈이다. 서울대와 하버드대 로스쿨이라는 한·미 양국의 최고 학벌을 섭렵한 엄친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경제관료 사이에서 ‘다거(大哥)’로 존경받는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아버지로, 이수성 전 총리의 여동생을 어머니로 둔 좋은 집안 덕분에 그가 직업을 바꿀 때마다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사실 이런 배경이 아니면 받기 힘든 과분한 관심이다. 학벌 좋고 집안 좋은 예능PD는 왜 국제변호사를 거쳐 외국계 사설 교육기관의 한국 지사장을 택했을까.

2010년 하버드 로스쿨 졸업식(위). 2011년 홍콩 로펌에서 근무하던 시절`런닝맨` 촬영차 이곳에 온 유재석과 함께(아래).

-나이에 비해 다양한 직업을 섭렵했다.

 “보스턴컨설팅 다닐 때, 이게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원래 글로벌 회사를 다니며 아시아를 호령하는 커리어 우먼이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한 화장품 회사 판촉 여사원들 재배치를 맡았다. 말이 조정이지 결국 자르는 일이었다. 오히려 난 회사에 맞서 판촉사원들의 처우개선을 하고 싶은데 고객(회사) 수익을 높이기 위해 판촉 여사원을 잘라야 하니 ‘내가 왜 이걸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치관이 부딪혀서 행복하지 않았다. 4개월 만에 그만뒀다. 즐겁게 살고 싶어 PD로 전직했다.”

-PD도 그만두지 않았나.

 “‘야심만만’이라는 프로그램을 맡아서 하는 얼마 동안 무척 행복했다. 그러다 가슴에 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나는 재미뿐 아니라 사회적 의미까지 찾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그만뒀다. 국제기관에서 일하는 걸 목표로 국제법을 공부하기 위해 하버드 로스쿨에 갔다. 막상 국제법을 배워보니 또 생각이 달라졌다. 유엔 같은 국제기구는 결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또 국제법이라는 게 강대국 논리로 움직이는 거라 실망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기까지 숨 고르는 셈치고 한동안 변호사로 일했다.”

-지금 직업은 원하던 일인가.

 “사람들이 많이 물어본다. 그때마다 ‘행복합니다’라고 답한다. 교육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돕는 게 즐겁다. 또 회사 분위기가 글로벌하면서 수평적이라 재밌다.”

-서울대에 하버드 로스쿨까지 학벌이 화려하다. 중·고교 시절이 궁금하다.

 “TV 중독이었다. 월화·수목·주말 드라마를 모두 섭렵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어제 어떻게 됐느냐’고 드라마 내용을 물어볼 정도였다. 난 지구력은 떨어지고 집중력이 강한 스타일이다. 드라마를 보고 공부하는 게 낫지 드라마 안 보면 궁금해서 집중력이 떨어졌다. 늘 출처불명의 자긍심이 강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내가 윤선주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시험 기간이 되면 바짝 집중해서 공부했다.”

-TV만 보는 딸을 부모님이 그냥 내버려뒀나.

 “사연이 있다. 중3 겨울방학 때 당시 서울대 법대 다니던 오빠를 잃은 일이다. 큰 충격을 받은 부모님은 아마 ‘그저 살아만 있어다오’라는 심정 아니었을까. 대원외고 입학하자마다 어머니가 학교에 가서 ‘얘는 서울대 안 가도 좋으니 그냥 내버려두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그래서 애들 다 하는 야자(야간 자율학습)도 안 하고 드라마를 마음껏 봤다. 드라마가 도피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드라마 보는 동안 오빠 잃은 슬픔을 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서울대를 갔다. 천재였나 보다.

 “아니다. 고2까지 공부를 못했다. 오빠는 내 세상 전부 같은 존재라 충격이 컸다. 누가 ‘자기 오빠랑 싸웠다’고 얘기만 해도 오빠 생각이 떠올라 눈물을 왈칵 쏟을 정도였으니. 어느 날 문득 ‘친구들 공부 방해하며 민폐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지 않도록 감정을 컨트롤했다. 감정이 가라앉으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늦어도 너무 늦었다. 남들은 기본·실력 『수학의 정석』을 몇 번 풀어본 고3 때 나는 기본을 시작했다. 수학을 못해 수능 전날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아버지 따라 어릴 때 미국에 살아 영어는 잘했다. 암기력이 좋아 사회탐구, 과학탐구도 큰 문제가 없었다.”

-초등학교를 한·미 양국에서 다 다녔다. 양쪽을 비교해보면 가장 다른 게 뭔가.

 “미국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 동화책을 읽어주고서도 ‘어떻게 생각하니’라는 질문을 받았다. 학생이 이해했는지 확인을 꼼꼼하게 하고, 학생의 의견을 물어보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갖게 해준다. 한국에 오니 진도를 나가기 바쁘더라. 학생이 이해를 하는 것보다 정해진 일정을 맞추는 게 중요했던 것처럼.”

-하버드 출신이라는 게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가보니 나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이 떨어지더라. 객관식·주관식 답만 맞히다가 사고(思考)라는 걸 하는 게 힘들었다. 자괴감도 많이 느꼈다. 다만 하버드 나와 좋은 것 중 하나는 공공분야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된 것이다. 방학 때 다양한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할 수 있도록 비행기표나 생활비를 주고, 졸업 후 월급 적은 공공분야에서 일하면 학자금 빚도 일정금액 탕감해준다.”

-부모님의 영향도 궁금하다.

 “아버지가 너무 바빠 자식 교육을 챙기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와 초등학교 3학년 때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짝이 시험에서 2개 틀렸는데 ‘집에 가면 아빠한테 죽는다’며 울상을 짓는 거다. 나는 13개 틀렸는데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시험을 보는지도 몰랐으니까. 직업에 대해선 한 우물만 파온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뭘 새로 시작한다고 하면 ‘또? 나는 정말 너를 모르겠다, 우리 딸은 너무 도깨비 같아서…’라고 혀를 찬다. 하지만 ‘하지 말라’는 말은 안 한다.”

-전직을 꿈꾸다가도 이런저런 부담 때문에 실행에는 옮기지 못한다. ‘백그라운드’가 든든해서 가능했던 건 아닐까.

 “맞다. 부모님 부양 걱정 안 해도 되고, 부모님이 내 결정을 존중해준다. 하지만 아버지가 장관이라 혜택 본 거 아니냐 묻는다면 억울하다. 직업은 온전히 내 능력을 발판으로 얻었다. 공무원이라 집에 돈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니다. 하버드 학자금 대출을 아직 7000만원 더 갚아야 한다. 특히 누구 딸로 불리는 게 끔찍하게 싫어 웬만한 건 아버지한테 부탁 안 한다. 내 인생이 4전5기다. 여기까지 오는데 4번의 전직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돈도 많이 벌지 못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항상 강조한다. ‘갈지자’ 인생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번에 성공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실패는 아니다. 나도 처음부터 이 일을 했으면 만족했을까. 아닐 거라고 확신한다.”

글=유성운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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