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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 통한 동·서 이해|회의 중심으로 본 서울 「펜」 대회 결산|이창배<동국대 교수·영 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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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번 제37차 국제 「펜」대회가 거국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은 보람이 있어 대체로 성공리에 막을 내린 것을 크게 기뻐한다. 처음부터 염려했던 참가 인원수도 한국을 제외한 33개국 1백50여명이면 과히 적은 편은 아니었고, 회의 진행이나 접대면에서도 큰 실수가 없었다. 회의 중에 엉뚱한 정치적인 문제 같은 것으로 소란을 피우지 않은 것도 크게 다행한 일이다.
회의 면에서 말하자면, 이번 회의의 주제를 『동서 문학에 있어서의 유머』로 정한 것은 누가 무슨 말을 한대도 그것은 기발한 착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이 이 회의를 성공시킨 큰 요인의 한가지이다.
주제의 의미가 너무 뚜렷하기 때문에 논술의 범위와 방향에 통일성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 논제의 성격으로 말미암아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가질 수 있었고, 아울러 우리는 웃음 앞에서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여 모두가 어린아이 같이 한 마음이 되어 순진할 수 있는 사해 동포 의식을 체험한 것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칭찬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에 발표된 논문은 특별 강연이 4편, 그리고 분과 주제 논문이 40편, 총 44편의 「페이퍼」가 낭독되었다. 이렇게 풍성한 논문이 발표되었건만 거기엔 몇 가지 지적할 만한 일이 없지 않아 있다.
첫째 발표 논문은 많은 반면 토론은 거의 없는, 일종의 듣고 앉은 회의로 시종한 점이다. 즉 분과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원탁 회의의 형식을 취한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번 조선 「호텔」「그랜드·볼·룸」에서와 같이 약 3백명의 각국 대표들과 방청객·내빈·기자들이 뒤 섞여서 단상을 향하여 앉는 형식으로는 자유스럽고 활발한 토론은 거의 기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논문이 발표되고서도 거의 매 회의 때마다 약 30분전에 끝났다는 것이 의사과의 이야기다.
욕심을 말한다면 발표 논문 수를 줄이고서도 각국 대표 전원이 이왕 참가한 기회에 최소한 한두 번의 발언 기회는 가졌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발언의 기회를 가짐으로써 각 분과마다에서 좀더 깊이 있고 종합적인 의견의 일치 같은 것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발표한 논문이 40여 편이지만 한국과 일본이 각 7편으로 가장 많고, 월남이 5편, 나머지는 거의 1편 꼴로 총 21개국이 발표에 참가했다. 그밖의 13개국의 대표들은 발표에도 토론에도 참가 없이 이 머나먼 나라까지 와서 몇 번 회의장에 앉아 보고서 그대로 떠나가는 셈이 되었다.
그중 네덜란드 칠레 같은 나라는 각 3명씩이나 대표가 왔던 것이다. 그렇게 아무 하는 일없이 듣고만 가는 회원의 수는 한국까지 포함해서 전체 2백58명 중 약 2백명이 넘는 숫자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이번 회의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과거의 어느 회의 때나 그러했다는 것이고, 그렇게 자유롭기(?) 때문에 정대표석 마저도 비어 있는 자리가 언제나 많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대체 무엇을 하러 와서 어디를 돌아다니는 것일까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문인들의 모임이란 정치가들의 모임이나 각료 회의 같은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으리라. 그뿐 아니라 국제 친선과 우호 친목이라는 또 하나의 큰 목적도 있다는 점도 고려치 않을 수 없겠다.
그러나 발표된 논문에 대해서만은 그렇게 관대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귀중한 기회에 발표되는 논문은 그것이 어떤 면에서든 각국 문학의 상호 이해와 발달에 어떤 공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이번에 발표된 「존·업다이크」씨의 『소설에 있어서의 유머』, 「토니·마이에」씨의 『기지와 유머의 차이』, 이은상씨의, 동양의 유머의 특성』 같은 우수한 논문이 있었는가 하면, 「이란」 대표 「자인·알라레딘·라네마」의 『「페르샤」 문학에서의 유머』 같은 불성실한 발표도 있었다. 그는 「페르샤」 문학의 「유머」는 「코란」경 속에 다 기재되어 있다는 한마디로 발표 아닌 발표를 끝맺고 말았다.
그리고 간혹 논문 중에는 이번 대회의 주제와 다소 거리가 먼 문학에 있어서의 유머가 아닌 유머 일반 내지는 속담·익살·웃음거리 이야기 같은 것을 논한 안이한 논문들이 있었던 것은 유감이다.
우리는 좀더 문학을 위주로 생각해 주고 진지하고 깊이 있는 논문이 나와 주기를 바랐던 것이고 한 문학 속성으로서의 유머가 작품의 주제 면에서 어떤 기능을 가지며 어떻게 작용하여 새로운 시대의 문학 형태로서 발전시켜야 할 것인가를 논하는 데까지 토론이 전개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 점 「존·업다이크」씨의 「타이프」지 장장 18장에 걸친 논문은 그 진지한 학구적 태도와 예술가다운 통찰력에 있어 제1급의 논문이었고 이번 회의 최대의 수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세르반테스 「마크·퉤인」 등 풍부한 유머 작가를 예로 취급하여 문학에 있어서의 유머는 그것이 우리를 새롭고 신비한 세계 앞에 즐거워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게 하는 구실을 한다고 결론지었던 것이다.
끝으로 이번 대회의 특기할 만한 성과는 아주 번역국의 발족이다. 그 기구의 본부를 서울에 두는 것까지 성취하였는데 이 기구의 효율적인 운영에 따라 우리 문학의 국제 진출은 박차를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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