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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서울 펜 대회|세계로 뻗는 한국 문학의 새 이정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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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언어 장벽 넘은 문필인의 「유엔」>
문학에는 국경이 없어야겠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느 특정한 민족과 국가에 종속돼 있을지라도 그의 작품은 그런 구애를 받아서는 안되리라. 다만 장벽이 있다면 언어. 그러나 그 언어조차 서로 만나 얼굴을 마주 대하면 어느 정도 해소하는 길이 트인다. 그들의 밑바탕에 흐르는 공통된 사상, 즉 자유와 평화를 지향하는 뜻은 서로 이해가 가능하고 또 만인의 심금을 울린다.
동서의 문필인들이 자리를 같이 하는 국제 「펜」 대회는 바로 그 지름길을 모색하는 모임이다. 말하자면 문필인들의 「유엔」 총회 같은 것이랄까, 최대 규모의 국제 기구이다. 73개국 84개 「펜·센터」에는 자유 진영 국가는 물론 공산권 국가까지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이번 서울 대회는 그들 모든 나라의 「펜」 본부에 초청장을 띄웠고, 그중 단 한 사람이나마 공산권에서도 국가 대표를 보내 왔다. 그 유고 대표는 우리 나라에 맨 처음 발을 디딘 공산권 작가지만, 어느 국가 대표와 마찬가지로 정중한 예우를 받았다. 그리고 동서의 문필인들은 스스럼없이 서로를 맞이하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다정한 대화를 나눈다.

<주제 「해학」은 시대적 요청>
6월29일부터 7월3일까지의 5일간. 제37차 국제 「펜」 대회를 서울에서 마련한 것은 세계로 향하는 우리 문학의 빛나는 이정표며, 또한 우리 문학 사상에 큰 발자취를 남기는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1921년 영국에서 첫 모임을 가진 이래 「펜」 대회는 이번이 동양에서 두번째. 1957년 일본 「펜」이 도오꾜에서 개최한바 있는데, 일본을 제외한 21개국 25개 「센터」에서 2백여명이 참가했었다. 지난해 36차 「망통」 대회에는 4백여명의 「펜」 회원들이 참가했었다. 이번 서울 대회에는 67명의 한국 대표를 포함하여 2백14명의 각국 대표가 참가, 풍성한 잔치를 벌이고 있다. 더 많은 명사들을 모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그러나 우리의 지금 사정으로는 이만큼도 여간한 용단이 아니다. 한갓 문필인의 행사로서가 아니라,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희구하는 마음가짐으로 온 국민이 이 대회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대회는 특히 「해학」을 주제로 하여 상호 이해와 협력의 길을 다진다. 『해학은 인간에게 활기를 북돋워 주는 청량제』(임어당씨 강연)인 까닭에 『긴장과 불안, 초조와 폭력이 온 세계를 뒤덮고 있는 오늘, 그것이 더욱 요청되는 것이다.』(백철씨 개회사) 그래서 인류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나아가 사회적인 모순과 국가간의 충돌을 감소시키기 위하여 새삼 해학을 생각게 하고 터득케 하는 자리를 베푼 것이다.

<한국 이해시키는 광장 구실>
이러한 목적은 영국의 여류 작가 스코트 여사가 제창한 「펜」 창설 취지와 상통하며 또 유엔 정신에 일치한다. 「펜」은 스스로 다짐하는 4개 항목의 헌장(l948년 제정)이 있으니 ①국경을 초월한 교류 ②정치 권력의 배제 ③인종과 계급의 타파 ④자유로운 의사 발표 등이 그것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시인·소설가·극작가·평론 및 수필가·편집인 등 광범한 의미에서의 문필가이며, 「펜」은 곧 그 문필가들의 유일한 범세계 기구이다. 서울 대회 참석자 중에는 임어당(75세) 천단강성(71세)씨 등 세기에 문명을 떨친 노대가들도 있으며, 「한스·반데바르센부르크」(27·네덜란드) 「레·비·하」(27·베트남)씨 등 젊은 세대도 함께 오늘의 과제를 논의한다. 회의 기간 중에는 4회의 특별 강연과 6차의 회의가 있으며, 그리고 11차례의 초대 파티와 4개 지역에 대한 관광 및 관람 스케줄도 포함된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제약을 초월하는 「모임」 그 자체에 의의가 있다. 외국 대표들은 공항에 내리면서 한결같이 한국을 알고 싶어했다. 과연 우리는 이 대회를 통하여 모든 대표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었으며, 세계로 향하는 우리의 발판은 얼마나 굳혀졌을까. 나아가 인류 복 지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얼마만큼 달성 됐는가를, 이 감격이 가시기 전에 돌이켜 봐야 할 것이다. 【글 권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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