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 지키던 허준 의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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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가족인 줄도 모르고…."

지난 18일 대구지하철 참사현장에서 시민들의 현장 접근을 막고 있던 대구중부경찰서 소속 허준(22) 의경은 믿을 수 없는 전화 한통을 받고 망연자실했다.

저녁 무렵 가족으로부터 큰형 허현(29)씨가 지하철 참사로 실종됐다는 소식이 날아든 것이었다. 누구보다 자신을 아껴줬던 형이 중앙로역 구내에서 생사의 고비를 오가는 순간, 구출하러 뛰어들기는커녕 유가족 등의 현장 접근을 막으며 짜증까지 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許의경은 사고 당일 가장 먼저 현장에 출동, 방독면을 쓰고 지하로 뛰어들었다. 사경을 헤매는 형과 맞닥뜨릴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곧 119구조대가 도착, 군중통제를 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통제선을 뚫고 구조지휘본부에 접근하려는 유가족들 때문에 짜증도 났다. 몸이 파김치가 될 저녁 무렵 집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

"네 형 실종됐다. 찾아보거라."

許의경은 정신없이 지하 역사 안으로 뛰어가 봤지만 형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고 매캐한 연기만이 그를 맞았다. 소속부대에서 이 사실을 알고 특별외박까지 내줬으나 딱히 갈 곳이 없었다.

許의경은 큰형의 친구가 휴대전화로 받았다는 형의 마지막 통화에 가슴이 아린다고 되뇌고 있다. "나 죽어가고 있어. 기도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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