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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참선하고도 주지 자리나 기웃거려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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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불교 조계종의 대표적 강사인 무비 스님. 화두 참선의 원칙을 강조하는 책 『이것이 간화선이다』를 펴냈다. 스님은 “번뇌로 들끓는 모습 그대로 사람은 부처만큼 소중한 존재”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세계 곳곳이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간의 좁은 안목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불가(佛家)에서는 끔찍한 자연재해도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라고 가르친다.

 가령 아무리 거센 폭우가 몰아쳐도 지구 전체의 수분의 양에는 변함이 없다는 거다. 불증불감(不增不減), 길게 보면 결국 더해지는 것도 덜해지는 것도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바탕에는 모든 존재가 실은 실체가 없다는 것, 그러니 불교에 의지해 흔들림 없는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 봉은사를 찾았다. 이 시대 대표적인 강백(講伯·강사)으로 꼽히는 무비(無比·70) 스님으로부터 답답한 여름날, 청량한 법음(法音)을 듣기 위해서다. 마침 스님은 『이것이 간화선이다』(민족사)를 막 출간한 참이었다. 중국 송나라 때의 선사 대혜(大慧) 종고(1089∼1163)의 간화선(화두 참선) 지침서 『서장(書狀)』을 번역·해설한 책이다.

선불교 대중화의 그늘 … 가치관 부실해져

 -어떤 책인가.

 “대혜 종고 선사가 당대 지식인들의 간화선 수행에 관한 질문에 답한 편지 65편을 모은 게 『서장』이다. 선사의 수행 지침은 너무하다 싶을 만큼 엄격하다. 요즘 식으로 얘기하면 가령 마취제 없이 수술을 받아도 화두 참선이 가능해야 한다. 병중일여(病中一如)다. 한마디로 목숨 걸고 불교 공부 하든지, 아니면 일찌감치 그만두라는 얘기다. 나는 전통 불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골동품 같은 사람이라고나 할까. 요즘은 불경을 번역하고 해석하는 이가 드물다.”

 -현대불교에 보내는 메시지라면.

 “선불교 대중화 바람이 불면서 간화선의 원형이 왜곡되고 있다. 불교적인 가치관이 부실하다 보니 20~30년 참선했다는 사람들이 본사 주지 자리나 기웃거린다. 생사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양심을 왜곡해선 안 된다.”

 -10월 총무원장 선출을 앞두고 조계종이 어수선한데.

 “요새 젊은 스님들은 불교에 그렇게 심취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염려스럽다. 출판사 사장에게 부탁해 총무원장에게 이번 책 10권을 갖다 줄 생각이다. 종단정치 문제로 모임이 잦을 텐데 읽어 보고 출가인의 본분을 되새겼으면 한다.”

 -화제를 바꿔보자.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철학 같다.

 “맞다. 거기서 한발 더 나가면 불교는 수행이다. 마음에 체득돼 인생에 반영돼야 살아 있는 불교다.”

 -못된 짓 하면 윤회를 거듭한다는 세계관은 어떻게 받아들이나.

 “어제 내가 한 일이 오늘 열매를 맺고 내일 할 일로 발전한다. 이런 과정을 확대한 게 전생·금생·내생 아닐까. 내가 죽은 뒤 어떻게 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별로 관심도 없다.”

 -불교는 모든 게 공(空)하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강조한다. 허무주의에 빠지기 쉬운데.

 “제행무상은 번뇌가 없는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다리다. 여기서 주저 앉으면 허무주의에 빠진다. 다리를 건너가 보살행으로 나가야 한다. 보살행은 겁이 없어지는 거다. 불쌍한 사람에게 앞뒤 재지 말고 가진 돈 1000만원 다 털어 주는 거다.”

 스님은 마음의 평정을 찾는 이들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의 사람이 곧 부처’라는 인불(人佛)사상을 강조해 왔다. 수행이 필요 없다는 뜻일까.

 -사람이 어떻게 곧 부처인가.

 “평생 불교 공부한 결론이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8만4000 번뇌 들끓고 있는 상태 그대로 부처가 아닐 이유가 없구나, 사람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구나, 이걸 깨닫게 됐다. 인불사상을 실천할 때 가정과 세상에 평화가 온다. 그게 내 지론이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그대로 부처다

 -불경에 나오는 살인마 앙굴리마라는 99명을 죽이고도 깊이 뉘우쳐 수행자가 됐다. 세속의 윤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경전을 액면 그대로 이해해선 곤란하다. 말이 겨냥하는 바가 뭔지, 낙처(落處)를 살펴라.”

 -성철 스님의 1983년 종정 수락 법어 ‘산은 산, 물은 물’이 실은 스님의 작품이라고 들었다.

 “8·15 담화문 전체를 대통령이 직접 쓰는 것 아니지 않는가. 그래도 대통령 이름으로 나가지. 그렇게 알고 넘어가야지….”

 스님은 미소가 일품이었다. 말투가 시원시원했다. 사람을 편안하게 하면서도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이름난 강백다웠다.

요즘 “80권짜리 『화엄경』 강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8년 이상 걸리는 대작 불사(佛事)다. 끊임 없는 불법(佛法) 보시가 스님의 수행방편이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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