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파랗게 개인(?) 하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0면

말복이 지난 지도 한참이나 됐지만 여전히 덥다. 가끔씩 하늘이 깜깜해지고 지역에 따라 소나기가 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금방 파랗게 ‘개인’ 하늘에서는 다시 태양이 불볕을 퍼붓는다. 맑은 날보다는 우중충하게 구름 낀 날이 고맙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주위에서 ‘개인 하늘’이라고 쓰는 걸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흐리거나 궂은 날씨가 맑아지다’란 의미로 쓰이는 단어는 ‘개이다’가 아니라 ‘개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갠 하늘’이라고 쓰는 것이 옳다. 인기 있는 가요나 예술 작품에 어문규정에 맞지 않는 구절이 들어갈 경우 쉽게 확산되는데 이 경우도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제목이 ‘어떤 개인 날’로 번역된 것이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기본형을 잘못 알고 있어서 틀리기 쉬운 표현들을 몇몇 더 찾아보자. 예전 시골집들은 짚을 엮어 지붕을 덮은 곳이 많았다. 짚 외에도 부유한 집에서는 기와를 썼고, 산촌 등에서는 얇은 돌이나 나무 조각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재료로 지붕을 올리는 일을 표현할 때 ‘굴피/기와/짚으로 지붕을 이은 집’처럼 쓰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지붕을 인 집’이라고 해야 바르다. ‘기와나 이엉 따위로 지붕을 덮다’란 뜻의 단어는 ‘잇다’가 아니라 ‘이다’이며 ‘이고, 이어, 이니, 인’ 등으로 활용하므로 ‘이은’이 아니라 ‘인’이 옳다. ‘강에 인접한 지역에서는 갈대로 지붕을 잇고’ ‘사당 문을 고치고 지붕을 새로 이으니’ 같은 표현도 ‘갈대로 지붕을 이고’ ‘지붕을 새로 이니’라고 해야 한다.

 “시간 되면 우리 회사에 잠깐 들렸다가 가세요”처럼 ‘지나는 길에 잠깐 들어가 머무르다’란 뜻으로 ‘들리다’를 쓰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지만 이때도 ‘들르다’가 바른 표현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니, 들러서, 들르면’으로 활용하므로 ‘들렸다가’가 아니라 ‘들렀다가’로 해야 한다. “우리 집에 들리면 제 소식 좀 전해 주세요” “가는 길에 우체국에 들려서 이 편지 좀 부쳐 줘”의 경우도 ‘우리 집에 들르면’ ‘우체국에 들러서’로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김형식 기자

▶ [우리말 바루기]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