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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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느 관상책에서나 범죄형이라는 것을 풀이해 주고 있다. 검은 자위가 작고, 눈동자에 안정감이 없고, 이마에 불규칙한 주름살이 많고.
대충 이런 험한 인상을 가진 사람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적혀있다. 물론 이런 것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범죄의 요인은 단순히 유전적인 것뿐이 아니라, 사회적인 영향을 더 많이 받기때문이다.
언젠가 미국의 한 의사가 6세부터 8세까지의 모든 어린이에게 범죄성향의 테스트를 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이때, 소년범죄에 골치를 썩이고 있던 백악관에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으나, 미국 정신의학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이를 즉각 공박하였다.
『법률자체가 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범죄성향을 잴 수 있다는 생각처럼 가소로운 일은 없다. 만일에 미켈란젤로가 7, 8세때 그런 테스트를 받았다면 그는 사회적으로 살해됐을 것이다.』
역시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는 티없이 맑은 마음을 가기고 있다는 루소의 말이 옳은 것 같다. 그런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어느덧 죄에 물들여진다고 생각하면 몹시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렇게 볼때 최근 우리나라 시골에 사는 14세의 어떤 소녀가 급우의 도시락에 극약을 넣어 죽이려했던 사건은 여간 충격적인 것이 아니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이 소녀로 하여금 살의를 품게 만든 직접적인 동기는 수위다툼이었다한다.
누구에게나 순위다툼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은 있다. 언제나 자기보다 앞서가는 급우가 죽이고 싶도록 미울 때도 있을 것이다.
담임선생의 편애를 받는 급우를 견딜 수 없이 시기한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철부지 어린이의 짓이라 하더라도, 죽이고 싶도록 밉다는 증오심을 갖는다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행동에 옮긴다는 것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이런 차이를 일깨워 주는 것이 사실은 윤리감이며, 교육의 목적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은 교실안에서 담임 선생만이 맡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우리네 사회의 병적인 풍토가 어린 마음에서부터 선악의 판단력을 마비시켜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아무리 전국적인 쥐잡기운동을 펴기위해서라지만, 그처럼 손쉽게 아이들에게 극약을 만질 수 있게 한 처사도 한번 생각해 볼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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