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가수에게 듣고 싶은 건 노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 요즘 대세라는 걸그룹 ‘크레용팝’, 인기의 단맛을 맛보기도 전에 위기를 맞았다. 보수 성향 사이트 ‘일베’와의 관련 여부 때문이다. 요지인즉슨, 멤버 중 한 명이 올린 트위터 글에 ‘노무노무’ ‘절뚝이’라는 표현이 쓰였는데, 이는 일베에서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한 표현이라는 것. 또 소속사 대표가 데뷔 초 일베에 짧은 글을 남긴 사실이 문제가 됐다. 6월 불거진 이 논란이 트위터·인터넷을 통해 점점 더 커지자 21일 소속사 측은 자신들이 일베와 무관하고, 사이트 가입은 홍보 수단이었다며 공식 해명했다.

 # 신인 가수의 등용문이 된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5’가 한창 방영 중이다. 이번엔 유독 특이한 참가자들이 많아서 전직 가수, 연예인 커플 부부의 아들, 프로 뮤지션 밴드, 국내 록 대부의 아들 등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들만도 충분한 ‘얘기’가 될 법한데 일반 참가자들의 사연 역시 하나하나가 절절하다. 누구는 군대 가 있는 동안 고무신 거꾸로 신은 애인 얘기를 하며 영상편지를 보내고, 누구는 부모와 함께 자라지 못한 환경을 고백한다.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50대의 망부가도 흐른다. 노래를 부르기도 전에 심사위원들이 감동받은 표정을 짓는다.

 막 뜨는 신인 가수와 인기 프로에 나온 가수 지망생들. 이들에게는 ‘누구지?’ ‘뭘 부르지?’라는 호기심이 쏠린다. 그런데 요 며칠간 막상 알게 되는 건 날 선 논쟁 내지 ‘인간극장’을 방불케 하는 스토리들이다. 노래라는 본질이 뒤로 빠져 있으니 삐딱한 시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만 봐도 그렇다. 크레용팝에 대해선 “노출·섹시 컨셉트가 식상하니 이제는 이념성 컨셉트로 ‘노이즈 마케팅’을 한다”는 비난이 나오고, 오디션 프로를 두고는 “노래 시간보다 사연 소개가 더 긴 주객전도” “음악에 감동하기보다 스토리에 동정표가 생긴다”며 비꼰다. 소속사와 프로그램 제작진의 의도가 ‘무플보다 악플’이라면 모를까 상황이 이렇게 흐르는 건 장기적으로 당사자들에게 좋을 리 없다.

 가수는 말 그대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다. 더구나 신인이라면 이념이나 살아온 과정을 듣기 전에 노래가 먼저 들려야 한다. 하고 싶은 얘기는 노래로 들려주라. 그간 ‘번외’ 거리가 약이 됐다 독으로 바뀌는 예가 얼마나 많았나. 데뷔 전 사귄 여자친구와의 결별이 이미지를 흐리고, 암 투병의 딱한 사연이 ‘홍보 전술’로 오인돼 악플 세례를 받기도 한다. 모두 ‘곁가지’ 하나 없어도 노래만큼은 최고로 꼽히던 이들이다.

 전설이 된 가수들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그들의 정치관을, 그리고 사생활을 노래보다 더 많이 기억하고 있을까. 대중 역시 노래가 좋아 스스로 팬이 됐고, 가사가 마음에 와닿아 따라 불렀다.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별별 뉴스가 되고 있는 요즘, 그래도 가수에게 듣고 싶은 건 역시 노래다.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