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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 갈등 속의 대학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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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에 있어서 「청년문화」의 성격과 이 전망에 대한 논의가 근래 빈번히 벌어지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4월 한국 휴머니스트 학생회에서 가진 「대학문화권의 형성」에 대한 세미나와 19일 서울여대 개교기념 패늘·디스커션의 「청년문화」에서 드러난 한국의 「대학생문화」는 기성문화와 큰 차이가 없는 듯이 보여진다. 서울여대의 청년문화 토론에서 박용헌 교수(서울대사대)는 『대학생들의 대화에서 그들 나름의 생활상, 인간상, 국가관이 없다는 것은 그들 나름의 꿈이 없다는 것을 뜻하며, 이는 청년만이 갖는 문화의 싹이 보이지 않는다는, 어떻게 생각하면 비극적 의미를 갖는 현상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서울대·고대·이대 토론자들이 참가한 패늘·디스커션에서 발제 강연을 한 박 교수는 「청년문화」를 「대학생문화」로 좁혀가면서 그 속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첫째 실용주의적 경향이 농후하다는 것. 대학생들은 소시민적 안일주의를 표방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기성세대가 해놓은 일이 뭐냐』고 반문한다.
둘째는 반항정신이다. 가정에서 부모, 학교에서 교수, 사회에서 성인의 행동적 통제를 거부한다.
세째는 부정적 정신이 강하다. 지난 연말의 유네스코 조사에서는 모든 것을 부정하면서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의 대안은 없었다.
그뿐 아니라 대학생으로서의 강한 선량의식이 있으면서도 지향할 가치관이 분명치 못한 한 개인적 존재다. 그러나 이 선량의식은 부정에 항거하는 정의감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낭만적 성향이 강하다. 이는 실용주의와 상반되는 것 같으면서 대학생들의 비현실적이고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강한 이상주의의 생활을 이룬다.
이런 속성을 가진 대학생은 4개의 문화권으로 분류할 수가 있다.
①동료 지향적 문화. 청년 특히 대학생들은 성인세대나 소년세대와 유대를 갖지 않고 클럽·서클 등 단체활동 중심의 유대를 강화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서울대에만도 등록된 서클이 2백이 넘고 실질적 인수는 3백이 넘는다. 이런 모임을 통해 대학생들은 동료에의 소속감을 충족시키며 자기 나름의 대학생활을 개척하려고 한다. 서울대의 경우 그 서클분포를 보면 학술연구(22%) 친목단체(20%) 종교(15%) 사회봉사(14%) 교양(12%) 예술(5%) 체육(4%) 순수오락(1%)의 순이다.
②직업 지향적 문화. 많은 학생이 이 문화권에 기울어지고 있다. 이념·진리탐구·교양 등은 사치로 생각한다. 이는 대학생들의 실용주의적 경향과 사회변화 등에서 온 결과다. 결과적으로 대학이 직업훈련소로까지 되어가고 있다. 이런 경향은 미국에서도 현저히 나타나고 있다. 코넬 대의 한 조사에서 대학을 직업훈련소로 보는 학생이 경제적 하류에서 70%, 중류에서 60%, 상류에서 50%였다.
③지식추구 지향적 문화. 대학의 본질인 지식탐구의 기능은 점점 적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기능은 학생들에 의해 많이 강조되고 있다. 유네스코의 지난 연말 조사에서도 대학의 지적풍토 부족에 80%가 불만이었다. 이 문화권에 속하는 대학생은 동료지향가운데 학술 서클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④과격적 혁신 지향적 문화. 사회의 이슈에 예민한 관심을 나타낸다. 반항·부정적 가치관을 갖고 기성 질서를 부정한다. 이 문화권에 속하는 대학생들은 사회는 어떻든 자기 나름의 행동과 사고를 하는 부정적 면이 강하긴 하지만 예술·사회봉사 등에 긍정적 활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문화권에서 비틀즈 등이 나온다.
한편 오늘날 「청년문화」가 크게 논의되는 원인을 박 교수는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했다.
첫째 사회적 여건이다. 가정의 사회적 기능이 점점 달라져 개인의 행동과 가치관의 육성, 통제기능이 상실되고 있다. 사회계층의 상승이 가정을 통해서 이뤄지지 못하며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도시화·산업화 등으로 부모의 기능은 약해지고 행동의 준거집단이 동료가 된다. 14∼15세에 결혼할 때와는 달리 청년기는 늘어나고 있다.
둘째로 대학의 기능변화이다. 대학인구의 팽창으로 희소가치가 없어지고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아지고 있다. 45년의 8천명이 70년 19만명으로 늘어난 대학생수는 그들 자신에게 갈등을 안겨다준다. 교수의 관심은 교수에서 연구로 옮겨져 가고 학생접촉의 기회가 적어져간다. 학교에서 얻은 지식과 기술이 사회에서 그대로 적응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적 여건을 보면 소년기와 성인기의 중간에서 대학생은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못하는 불안감과 부정적 성격을 갖는다. 고교까지 받던 통제가 완화되고 갑자기 오는 자유의 처리도 불안의 요소다. 경제적 여유가 나아졌다는 점도 욕구수준만 높여 놓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격차로 생기는 고민, 가치관의 갈등 등도 큰 문제가 된다.
박 교수는 특히 학생들에게 『주위가 흔들리면 자기의 인생관이 없어지고 거기에 왜 몰입해 버리느냐』고 물으면서 『왜?』라는 지적탐구심이 성장함에 따라 감소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순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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