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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동심에 심는 「고향의 긍지」|경주어린이 향토학교 윤경열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경주시립도서관 어두운 시청각실에 조무래기들이 가득 모였다. 낡은 환등기를 고치다 지친 선생님은 칠판 앞으로 갔다. 검은 커튼을 올리고 칠판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신라금관. 『노란빛 금과 파르스름한 옥이 어울려 바람이 불면 이영락들이 화려하게 흔들리거든요. 임금님에게 백성들이 박수치는 것 같지요』
검은 작업복차림의 윤경렬씨(55)는 일요일마다 이 고도의 어린이들을 모아 옛 신라의 서라벌로 안내하고 있다.
일본서 인형조각을 공부했던 윤씨는 고향이 함북 주을. 해방 후 신라의 풍속인형에 끌려 경주에 왔다가 아주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문화유적들인데 삼엄한 울타리를 하니 정말보기 싫었어요.』
1954년 당시 경주박물관장 진홍섭씨(이대박물관장)와 『울타리 없이 문화재를 보호할 수 없을까』이야기를 하게됐다.
울타리만 없으면 금방 부서지고 없어지는데 여기에 대한 뾰족한 대책은 없었다.
그러나 먼 안목으로 어린이들에게 문화재의 가치를 가르쳐주자는 생각을 했다. 곧 진 관장은 박물관사무실을 열어 책상도 다 치워줬다. 어린이들을 모아 영화를 돌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한방 가득 70∼80명씩 몰려들어 하루에 두 번씩이나 해야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이렇게 하여 세워진 것이 경주어린이 향토학교.
교장도 교실도 교과서도 없지만 윤씨의 이야기하나로 모든 것을 해냈다. 요즈음도 방이 좁아 못받을 정도다.
미국이나 영국의 어린이들 앞에서 뽐낼 수 있는 것은 『석굴암이 있기 때문입니다』-이런 대답을 얻을 때마다 흐뭇한 보람을 느낀다고 윤씨는 말한다.
『옛날부터 어린이들을 무척 좋아하셨어요.』 경주시 경동 전세 들고 있는 고옥에서 부인 마순금 여사는 윤씨를 가리켜 『어린이 없이는 못사는 분』이라고 한다.
석굴암 부처의 평화로운 얼굴이며 임금님의 멋진 차림, 박혁거세 얘기부터 포석정의 비화로…. 무수한 고적과 전설들을 아무 부담 없이 재미있게 듣도록, 그리하여 스스로 『자랑스런 경주』를 느끼도록 윤씨는 온갖 방법을 생각해 내야했다. 어린이들이 손수 양철을 오려 금관이나 탑, 사자 등을 만들게도 하고 연극도 꾸며 왕이며 화랑을 시켜보기도 한다.
어린이 향토학교는 그간 진 관장이 그곳을 떠난 58년부터 4년간 쉬었다. 62년 당시 경주 시립도서관장 김종준씨의 도움으로 다시 계속하여 지금까지 도서관 시청각실을 빌어쓰고 있다.
『문은 항상 열고 돈은 어떤 명목이든 안 받고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존댓말을 쓰기로』 이 학교를 세울 때부터의 약속은 아직껏 깨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윤씨는 제자가 몇 명이나 되느냐는 물음에 『경주어린이면 누구나』라고 말한다.
그동안 제자들은 커서 이제 향토학교교단에 서겠다고 나서고 있다. 일요일 상오9시부터 2시간동안 장차 이 학교를 맡겠다는 젊은이들 이철수·최용주·김태중씨 등은 열심히 어린이들 사이에서 윤씨의 강의를 돕고 있었다.<윤호미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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