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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보로부두르 불교 유적의 장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참삼 여행기<인도서 제14신>
저 유명한 불교의 유적 보로부두르와 프람바난을 찾기 위하여 반둥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향하였다. 야자나무 사이로 화산을 쳐다보는 것이 이 나라 자연풍경의 특색이랄까. 철도며 도로란 으례 화산기슭을 돌게되는 만큼 이 나라는 화산을 둘러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도 만디(수욕)를 즐기듯이 물소들도 무더워 견딜 수 없는지 웅덩이 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 이 나라의 물소는 스페인의 날카로운 투우와는 달리 인도의 성우처럼 매우 인자해 보였다.
그 커다란 눈을 스르르 감고 무슨 생각에 잠긴 듯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못지 않은 생각하는 소의 역학적인 조각미가 있다. 샤갈이나 피카소의 그림 속의 소보다도 회화적인 새로운 소재가 아닌가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촌풍경의 하나로서 경사지에 마련된 계단식 논이 펼쳐지는데 뙤약볕이 내리쬐는 대낮 농부들이 남자들 틈에 끼여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 전원풍경 속을 누비며 목적지 보로부두르에 가까운 역에 이르렀는데 여기서 이 유적까지는 버스로 달렸다. 그런데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이 유적이 보였을 때 매우 숭고하고도 장엄하게 느껴졌다. 고색 창연한 이 석조건축의 모습이 이 나라에서는 이교로서 증오의 대상이 될는지는 모르나 불교의 영향을 받고 자라온 우리 나라의 한사람으로서는 어떤 친근감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학창시절 우리 나라 탑에 대하여 공부해온 나로서는 다른 불교 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형태의 이 유적을 볼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이 유적은 넓이 7천여평의 언덕 위에 세운 것인데 9층으로 되어있다. 기단은 20개의 다각으로 이루어졌고 층마다 넓은 회랑이 들려있다. 7층에는 72개의 복발식 보감이 있으며 이 보감마다 불상이 하나씩 안치되어있다. 그리고 꼭대기에는 4m나되는 큰 복발이 있다. 이런 것들이 한결같이 눈을 끌지만 그보다 더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여러 층에 있는 회랑의 벽에 아로새긴 석가의 일대기를 그린 릴리프(부조)였다. 이 벽 조각엔 여러 가지가 아로새겨져 있는데 인물·풍속습관·집기의 장식 또는 궁전의 수레들로서 그 솜씨가 매우 훌륭했다. 기교보다 진지한 예술정신이 넘치는데, 이것은 이 건축을 만들기 위하여 인도에서 건너왔던 예술가들이 모두 경건한 불교도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역시 예술이란 손재주뿐만 아니라 예술정신, 아니 그보다도 높은 신앙심이 없이는 이런 예술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 유적을 만든 재료는 거친 사암인데도 그처럼 섬세하고도 아기자기하게 조각할 수 있었는지 놀랄 정도이며, 특히 돌들의 접착제라 할 시멘트 같은 것은 조금도 쓰지 않고 그 큰 대 보탑을 쌓아올렸다는 것은 더욱 놀라왔다.
흔히 미학에서 가장 중하게 여기는 감정이입보다 더 중요한 신앙이입이 이렇듯 훌륭한 걸작을 낳은 것이 아닌가했다. 그 벽 조각 하나 하나에 불교의 얼이 깃들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이 유적이야말로 종교와 예술이 융합된 가장 드높은 차원의 건축미가 아닌가하고 느꼈다.
황홀하기보다는 엄숙한 마음으로 이 조각을 우러르고 또 쓰다듬어 보았다.
차야할 이 돌 조각이 열대의 태양열을 받아 따뜻하기 때문인지 더욱 이 조각 속의 인물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 유적은 자바 불교가 황금시대를 이루던 7세기에서 9세기에 이르는 동안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15세기에는 이슬람교의 세력으로 이 자바에 살던 불교도들이 발리섬으로 쫓겨갔다. 그리고 이 유적도 그전에 저 폼페이시처럼 화산회로 묻혀있던 것을 19세기초엽에 영국의 총독이 몇 천명의 일꾼을 시켜 덮였던 화산 회를 걷어 얼마만큼 보수했다는 것이다.
이곳은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스콜이 자주 쏟아져 풍화작용이 심하니 잘 관리해야 하겠거늘 이 나라 사람들은 거의 이슬람교도들이어서 이렇듯 고귀한 유적에도 관심이 없는지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버림받은 고아나 이단자처럼 쓸쓸해 보였다. 말하자면 이 유적은 역사의 고아, 문화의 고아, 또는 종교의 고아가 되지 않을까.
그러기에 더욱 애착이 가서 나는 이 유적에서 부서져나간 파편들을 주워서 제자리에 끼워 보기도하고 쌓아놓기도 했다. 굴러다니는 자그만 조각하나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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