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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 허정 서울시장의 50여년 전 시카고 방문 선물

미주중앙

입력

50여년 만에 일반에 공개된 서울시 행운의 열쇠. 열쇠 윗부분의 앞 뒤로 태극문양과 서울시 휘장이 있다.
허정 시장이 당시 행운의 열쇠와 함께 전달한 서한.
1969년 당시 문형태 합참의장이 선물한 명판. 합참의장을 상징하는 별 4개가 부착되어 있다.
시카고 다운타운 서쪽에 위치한 UIC 리차드 J. 데일리 도서관 전경. [UIC 데일리 도서관 웹사이트]

1893년 만국박람회부터 시작된 시카고와 한국의 인연은 어느덧 100년을 훨씬 지나고 있다. 그 동안 크고 작은 부침 속에서도 양측의 인연은 해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최근 일반에 공개된 리차드 J. 데일리 시장의 컬렉션 가운데 시카고와 한국의 관계에 의미를 더할 만한 사료가 발견됐다. 한인들에겐 또 하나의 귀중한 역사로 남을 사료를 중앙일보가 찾아가봤다. <편집자 주>

시카고를 방문한 서울시장의 선물이 50여년이 지난 뒤 일반에 공개됐다. 한국전쟁 직후 어려운 시기에 서울시장이 시카고를 방문했다는 사실과 당시 시카고 시장에게 전달한 선물이 눈길을 끈다. 지난 달 25일 문을 연 일리노이대 시카고(UIC) 도서관내 ‘리차드 J. 데일리 컬렉션’은 1955년부터 197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카고 시정을 이끈 ‘아버지’ 데일리 시장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21년간 시카고를 이끈 데일리 전 시장의 흔적에는 한국과의 오랜 인연도 포함되어 있다. 바로 허정(許政·1896~1988) 제 9대 서울시장이 반 세기도 전인 지난 1959년 시카고를 찾아 데일리 전 시장에게 선물한 ‘행운의 열쇠’다.

서울시민을 대표해 전달

지난 달 30일 UIC 리차드 J. 데일리 도서관 3층 특수기록실을 찾았다. 기록물 번호 ‘SVIss1B8-2’. 열쇠는 종이봉투에 들어있었다. 행운의 열쇠가 들어있던 붉은 벨벳 상자, 열쇠와 함께 전달한 편지도 함께였다.

열쇠는 황동 재질로 약 14cm 길이다. 열쇠 머리 앞면에는 ‘서울특별시’와 흰색으로 된 옛 서울시 휘장이, 뒷면에는 ‘City of Seoul’과 태극 문양이 있다. 열쇠의 막대 부분은 ‘서울’을 형상화했다. 열쇠를 담았던 상자는 겉은 와인색, 안은 검정색 벨벳으로 장식했다. ‘Key to Seoul’이라는 글귀도 적혀 있다. 열쇠와 함께 선물한 편지에는 “이 ‘서울의 열쇠’를 서울시민을 대표해 선물합니다. 당신의 성공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고 쓰여있다.

동아일보 1959년 5월 27일자 보도에 따르면 허정 서울시장은 1959년 5월 26일 데일리 시카고시장과 만나 서한과 함께 열쇠를 선물했다.
허정 시장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당시 필라델피아 시장의 초청으로 온 3주 간의 방미 일정 중 시카고를 방문했다. 딸과 함께였다.

허 시장은 1979년 출판한 회고록 ‘내일을 위한 증언’에서 “20대에 찾아와서 30대 중반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체득하고 떠난 미국 땅. 그 땅을 거의 30년만에 성숙한 딸 원을 데리고 다시 찾아본 방미 여행 자체는 참으로 감회깊고 즐거운 것이었다. 미국의 대도시를 돌아보며 도시 행정에 대해 배우고 느낀 바도 많았고…(후략)”라 기억했다.

한인 피살사건이 방미 계기

당시 리처드슨 딜워스 필라델피아 시장은 한 해 전인 1958년 벌어진 한 살인사건을 계기로 허정 시장을 초대했다.

1958년 4월 25일 펜실베니아대학에 다니던 한인 오인호 씨가 10대 11명에게 맞아 살해당했다. 범인들은 댄스파티에 갈 35센트를 마련하기 위해 오 씨를 죽인 것이다. 오 씨는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에서 공부했다. 미국 시민들은 경악했고 리처드슨 시장은 오 씨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렸다.

범인 11명 중 3명에게 살인 혐의로 유죄가 확정되었지만, 오 씨의 부모는 리처드슨 시장에게 편지를 보내 오히려 선처를 호소했다. 오 씨 부모의 행동은 미국인들을 감동시켰고 ‘오인호 장학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리처드슨 시장은 허 시장을 초청한다. 1959년 4월 16일자 ‘경향신문’의 ‘여적’은 “그 시장이 서울시장을 초청한다 하니 시민을 대표해서 사과하는 뜻이 아닐까”라고 적었다.

허정 시장은 1959년 5월 15일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다. 오인호 씨의 묘와 독립기념관도 방문했다. 필라델피아에 3일간 머문 허 시장은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에서 그는 맥아더 장군을 만났다. 이 만남을 허 시장은 회고록에서 방미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이후 워싱턴 D.C.를 거쳐 시카고에 도착했다.

1959년 5월 26일자 ‘워싱턴 포스트’지에 따르면, 시카고 시 대변인 에드윈 A. 몰의 안내로 허 시장과 딸 허원 씨는 시카고 여행을 했다. 허 시장은 이후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을 차례로 거쳐 6월 11일 귀국했다. 당시 그는 샌프란시스코 시장에게도 행운의 열쇠를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당시 미국 방문은 허 시장의 마지막 공식 일정이 됐다.

이승만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그가 부통령 출마를 노린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워싱턴 D.C.에서의 “정당정치는 아직 이르다”는 발언이 자유당 인사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었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모든 집에 상수도를 놓겠다는 그의 발언이 더 화제가 됐다. 1959년 5월 22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허정의 야망은 서울의 모든 집에 물이 나오는 것”이라며 “미국 국제협력기구(ICA)에서 140만 달러의 원조를 얻었다”고 보도했다.

합창의장이 기증한 명판도

‘리차드 J. 데일리 컬렉션’에는 ‘서울의 열쇠’ 이외에 한인이 기증한 선물이 하나 더 있다. 1969년 11월 19일 문형태 제 11대 합참의장이 데일리 시장에게 선물한 명판이다. 명판에는 합참의장을 상징하는 별 4개와 합동참모본부,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의 표장이 걸려있다. 다음날 시카고 트리뷴지는 문 장군이 “포트 쉐리단에서 의장대를 사열했다”고 사진과 함께 보도하기도 했다.

UIC도서관 누구나 열람 가능

다운타운 서쪽, 90·94번 하이웨이와 290번 하이웨이가 만나는 남서쪽. UIC 유니버시티 홀 앞에서 출발해 베이지색 건물로 가득한 캠퍼스를 5분쯤 걸었다. 웨스트 해리슨 길에서 만나는 사우스 모건(S. Morgan St.)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곧 수평 비례가 강조된 4층 규모의 리차드 J. 데일리 도서관이 나타난다. 서울과 시카고의 오랜 인연이 담겨 있는 곳이다.

리차드 J. 데일리 도서관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면 특수기록실(Special Collection)이 있다. 간단한 신청서를 작성하고 신분증을 보여주면 원하는 기록물을 볼 수 있다. 미리 문의를 하면 더 편하다. 특수기록실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수요일은 오후 7시까지 문을 연다.

작은 열쇠 하나가 50여 년 전 역사를 이어주듯 작은 인연, 지금의 사건 하나 하나가 먼 훗날 시카고와 한인, 나아가 한국의 의미를 전해줄 수도 있다.

박춘호·최창순 인턴 기자

◇리차드 J. 데일리 도서관(Richard J. Daley Library)은…

▶홈페이지 = library.uic.edu/
▶리차드 J. 데일리 컬렉션 목록 = uic.edu/depts/lib/findingaids/MSRJD_04intro.html
▶UIC 데일리 도서관 전화= 312-996-2716
▶특수기록실 전화= 312-996-2742
▶주소 = 801 S. Morgan St., Chicago, IL 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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