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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시인>|인간애 소묘와 문명비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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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달의 시평을 쓰기에 앞서 우선 몇마디 필자의 입장을 밝혀두자. 필자는 시평을, 언급된 시의 작자를 위해서 쓰지는 않겠다. 시의 초심자나 일반 애호가들이 그 달에 발표된 많은 시편을 읽기는 하더라도 그게 그것 같아 옥우을 가려내기 곤란할 경우, 그들이 시를 보는 안목에 세련된 자신을 얻는데 도움이 될만한 한 지침이 되고자 할 뿐이다.
『수국』(김종길·「신동아」5월호).
총 12항의 짧은 시다. 2항씩이 한 연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든지 7·5 조의 음수율은 자칫하면 진부하게 되기 십상인데 그런 대로 신선한 느낌을 주는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볼만하다.

<「유카립투스」의 방풍림 너머엔 고향의 기슭까지 잇닿은 바다> (제2연).

<상항은 골목마다 수국이 괸다. 한지로 만든 것 같은 괸다> (제3연).
김종길씨는 작년 가을엔 가 미국무성 초청으로 북미각지를 순방하고 돌아왔다. 이 시는 그때 잉태된 것이리라. 수국은 특히 한국적인 정서를 자아내는 꽃이라 하겠는데 미국 상항에서 수국을 대하니 <고향의 기슭까지 잇닿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망향에 젖은 김시인에겐 <맘 좋은 초면의 미국시인>까지 <하회탈 축에라도 나올 것 같은>친근감을 자아냈다. <케이키 빛집들><유카립투스의 방풍림><캘리포니아의 저녁 해>, 이런 이국 풍이 수국의 이미지와 무난히 결부되어 망향의 시정을 부각해 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증례·7』(마종기·「세대」5월호) 미국에 건너 간지 이미 몇 해가 지났으면서도 우리말시와 한국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는 시인이 있다. 의수이기도한 마종기씨가 그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한국의 현대시에 대한 세계적 평가 같은 것을 이제 좀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닐지. (중략) 토씨의 묘한 어감이나 한문자의 시각적 핵과를 노리기보다는 한편의 시를 통틀어 세계인의 가슴에 공감 내지 감동을 일으키도록 쓰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시작노트」에서)마씨의 동세대, 그러니까 30전후의 젊은 시인들은 특히 음미해 볼 만한 발언이 아닐까 한다. 주제면에서나 표현면에서나 오늘날의 젊은 시인들은 너무 자기 폐쇄적인 아집에 빠져 있다고 봐지므로. 사상의 빈곤을 극복함이 없이 허약한 개성이 신분의 유행어(?)인 「내면」이니 「애매성」이니 「실험」운운에 현혹되어 버린다면 남는 것은 한낱 잠시의 그것도 어지러운 겉멋 뿐 이리다.
마씨의 이번 시도 그의 종래의 시작이 그렇듯이 결코 섬세한 편은 아니지만 그 뼈다귀는 추려져있다. 살이나 피가 좀 부족한 듯한 느낌은 주면서도 감칠맛 있는 간결미를 이루었다.
사랑에 뉘우치는 인간 회복의 시. 나이 들어 자랄수록 건망증은 늘고, 보이는 것만 보는 눈은 어두워진다> 이런 구절도 성숙을 향한 시인 마종기씨의 투철한 시력을 짐작케 한다.『시내 버스의 독백』(문덕수·「구주대문학」5월호)문씨는 도합 4편의 시를 발표하고 있다. 그 중에서는 『시내 [버스]의 독일』과『세개의 보따리』가 시로서 짜여 있는 것 같다.
『세개의 보따리』는 일견 물상시라 할만한 것이지만 <종로2가 버스 정류소에 시골서 온 보따리 세 개>를 <길 잃은 오누이들> 그것도 <무심한 구둣발에 연신 채이면서 머리를 파묻고 껴안은 오누이들>로 비유한 점을 고려해 볼 때 단순치 않다. 비정의 대도시와 낙후된 농촌의 신랄한 대비로드 간주되기 때문이다. 작자의 이런 문명 비평의 의식이 더욱 구체화되고 첨예화 한 것이『시내 버스의 독백』이라고 본다.
교통지옥을 그렸다기보다 메커니즘의 포위로 말미암아 또한 당국의 무능으로 말미 암아,그리고 치사한 상혼으로 말미암아 소외된 인간천대에 대한 분노와 자학이 뒤범벅 되어 안으로 스민 시인의 저항이 보인다 할 것이다. 이 시 후반에선 파탄에 직면한 병든 문명의 한 단면도가 좀더 극명이 그려져 있다. 인간회복에의 절실한 염원이 항간에 스며있다.
시를 읽는 기술이란 오히려 항간의 침묵의 의미를 감독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뜻에서 김구용씨의『풍미』(「신동아」5월호) 는 어쩌면 이 항간의 침묵을 곧 주제로 삼고 있다고도 봐질 만큼 마치 한 폭의 옛 수묵화를 대하는 느낌이다. 그 막막한 보이지 않는 항간의 공간에서 보이는 시는 시작되어 나왔다가 다시 그 항간속에 꼬리를 감추기에 <분명치 못한 정확 정확한 막연>이 김씨가 생각하는 자신의 시법일까? <녹빛도피는 아름다웁다 외롭거든 각기 인자 하시라>이런 끝 구절만 음미해 보더라도 아뭏든 기묘한 매력을 지닌 김구용 특유의 「풍미」가 나는 시인엔 틀림없다.
그밖에 조병화씨의『달』( 「월간중앙」5월호)을 비롯해서 조효송씨의『아내가 기다리는 시간에』(「현대문학」5월호)등 소박 시풍에도 언급하고 싶었으나 지면관계로 이만 줄이겠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월간문학」과 「시인」5월호는 나오지 않았고 「현대시학」은 입수못 했기에 참고하지 못했음을 부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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