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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플라멩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잊을 수가 없네. 검은 드레스의 여인이 부른 그 슬픈 가락을. 노래 안나·마리아에 맞추어 춤추는 광열의 리듬. 스페인의 밤은 슬픈 노래와 광열의 리듬 속에 뿌옇게 증발되어 가고 있다.
플라멩코의 본 고장은 스페인의 남쪽 안달루샤 지방에 있는 고도 세빌랴.
가극 『세빌랴의 이발사』 『카르멘』의 무대였던 세빌랴. 카르멘시대, 그때의 연초공장자리에 지금은 여자단과대학이 세워져 카르멘 아닌 검은머리의 여대생들의 출입으로 북적거리고 있다한다.
나는 세빌랴로 가는 비행기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운 나쁘게 성주(Semana Santa)라는 대종교행사로 전국에서 여행자, 순례자들이 몰리는 바람에 호텔을 잡을 수 없고 벤치에서라도 잘 용기가 있으면 가라는 여행사의 만류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플라멩코는 마드리드에서도 볼 수는 있었다.
영어회화를 잘한다는 아끼가 이베리코 주인에게 부탁해서 예약은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여간 힘이 들지 않았다.
오후 10시부터 막이 열리는 나이트·클럽에 두 사람은 유흥도 관광도 아닌 스케치라는 고역(?)을 안고 스케치·북을 들고 들어갔다.
마드리드의 플라멩코는 섣불리 현대화된 춤이라고나 할까, 관광화 해버린 느낌이 있고 도리어 스페인적인 강한 개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공연히 엉덩이를 흔들어 대는 등…. 나는 차려놓은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이 스케치했다.
그런데 아끼는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움직이는 건 스케치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웨이터들은 바가지를 씌울 셈인지 무던히도 음식을 테이블 위에 갖다 올려, 나 역시 유쾌하질 않았다.
그러나 지중해쪽에 있는 개성이 강한 도시 바르셀로나의 어느 선술집에서 비로소 나는 세빌랴에 못간 아쉬운 염을 풀었던 것이다.
여인들은 검정드레스에 커다란 붉은 조화의 장미를 머리와 허리에 꽂고 기타에 맞추어 광열의 춤을 춘다. 무슨 까닭에 그리도 슬픈 것일까. 슬퍼서 못살겠다는 표정들이다.
플라멩코는 슬픔의 미학이 서린 움직이는 예술이라고 할까…. 그보다도 안달루샤·댄스 안나·마리아는 본격적인 춤으로 관객들을 열광시켜 주었다. [글·그림 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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