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금이 장외투쟁으로 풀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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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의 세제 개편안이 정치적으로 심상찮은 후폭풍을 부르고 있다. 중산층의 주축인 봉급생활자들의 세부담이 커지는 데 대해 정치권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다. 민주당은 오늘부터 ‘세금폭탄 저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인다. 그동안 국가정보원 국정조사와 관련해 벌여 온 장외투쟁의 메뉴에 세금 문제를 추가한 것이다. 새누리당도 내년 6월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간 소득계층의 세부담이 많이 느는 걸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이번 개편안은 복지 수요 를 감안한 어쩔 수 없는 고육책으로 볼 수 있다. 또 과세 형평성 강화, 서민·중소기업 세제 혜택 증가 등 큰 방향은 적절한 편이다. 그럼에도 연일 후폭풍을 부르고 있는 데엔 국민과 정치권을 제대로 설득시키지 못한 정부·청와대의 책임이 크다.

 세금을 더 내야 할 434만 명에 이르는 근로자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라. 복지 재원이라는 명분을 위해 그들은 실질적인 감봉(減俸)을 당할 처지다. 불만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이를 조심조심 다뤄 조세저항을 키우지 않도록 하는 게 정부의 능력이다. 그런데 청와대 경제수석은 어떻게 말했나. 국민의 눈높이로는 분명 증세(增稅)인데도 증세가 아니라며 관료 특유의 말장난 같은 설명을 늘어놨다. 또 “거위에게서 고통 없이 털을 뽑는 방식”이라며 왕조시대에서나 통하는 비유도 했다. 성실한 납세자가 처량한 거위쯤으로 보이는가. 논리도 비유도 적절치 않았다. 되레 불필요하게 반발심리를 키우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이 ‘세금폭탄’이라는 프레임으로 장외투쟁에 불을 붙이려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민주당의 주장에도 허점이 많다. 봉급생활자들의 세금이 늘긴 해도 ‘폭탄’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민주당은 줄곧 증세를 주장하지 않았나. 개편안엔 고액 연봉자의 세금이 더 무거워지므로 민주당의 ‘부자 증세’가 어느 정도 반영된 셈이다. 그런데도 세금폭탄 운운하며 투쟁하는 건 무책임한 선동이다.

 세금은 법률로 정해진다. 문제가 있다면 국민의 대표가 모인 국회에서 토론해 고치면 된다. 길거리에서 서명받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나. 세금은 구호가 아니다. 세금 문제만큼은 국회에서 차가운 머리로 고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