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클리닉] 큰 애와 등지게 되는 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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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큰 애(아들)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한 엄마입니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는 큰 애와는 사사건건 부딪치기 일쑤입니다. 집에 돌아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 도무지 나오지 않습니다. 학교 생활이 어떻느냐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습니다. 처음엔 대꾸라도 하더니만 이젠 마지못해 “예”와 “아니오”란 말이 고작입니다.

식사를 하다가도 듣기 싫은 소릴 하면 숟가락을 놓고 방에 들어가 버립니다. 벌써부터 부모에게 반항한다며 아빠가 몇차례 매를 들었지만 효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친구집을 전전하거나 독서실에 간다며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괴롭히는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딸)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는 짓마다 오빠인 큰애와 비교가 됩니다. 여자애라 그런지 여간 살갑게 구는 것이 아닙니다.

온종일 묵묵부답인 큰애와 너무나 다릅니다. 학교 생활이나 친구 이야기 등을 언제나 소상하게 들려주고 설거지나 집안 청소를 도와주기도 합니다. 학교 생활을 비롯해 매사에 큰애보다 야무져서 무엇 하나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얼마 전 제 생일날 작은애는 정성스럽게 쓴 카드와 함께 평소 용돈을 모아 립스틱을 선물로 마련했나 봅니다. 그런데 큰애는 선물은커녕 동생이 준비한 선물의 포장을 자기 마음대로 뜯더니 오히려 동생을 힐난하더라는 것입니다.

엄마한테 자기만 잘 보이려 한다고 했답니다. 우는 작은애를 몇차례나 달랜 뒤 겨우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자기와 비교된다 해도 어찌 어린 동생에게 위협까지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날은 어찌나 속이 상했는지 몇차례 손찌검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덩치가 커서인지 제가 때리는 매도 효과가 없어 보입니다. 남편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해외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아 큰애와 저는 늘 부딪치게 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날 밤 일이었습니다. 저녁도 먹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던 큰애가 갑자기 저에게 와서 "엄마는 세상에서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지"라며 원망 가득한 눈초리로 푸념하는 것이 아닙니까.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큰애에게 공부 잘하라고 닦달해본 적도 없습니다. 부모 말에 순종하기만 하는 효자가 되어달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그저 남들처럼 부모와 자식 간에 느낄 수 있는 조그마한 애정만이라도 큰애와 나누었으면 합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데 큰애는 밉게 느껴집니다. 둘째가 귀엽다지만 어찌 그리 차이가 날까요. 저도 이성적으론 자식을 편애해선 안된다고 늘 다짐해 봅니다. 하지만 큰애의 얼굴이나 옷차림만 봐도 짜증이 납니다.

저처럼 큰애와 등지고 사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부산에서 주부 김미정(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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