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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구리왕' 차용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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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창희
경제부문기자

차용규 소식은 검색순위 상위에 자주 오르는 인기 소재다. 삼성물산 직원이던 그는 회사가 카자흐스탄 구리광산인 카작무스 지분을 매각할 때 이를 넘겨받고 런던 증시에 상장시켜 1조원이 넘는 차익을 남겼다. 월급쟁이에서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부자로 떠오른 영화 같은 스토리는 소시민들에게 묘한 흥분을 안긴다.

 기자도 국세청과 삼성물산을 담당할 때 언론에 노출된 적 없는 그를 추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11년 국세청의 세무조사 때는 관계자들로부터 깊은 얘기를 듣기도 했다. 개요는 이렇다. 1조원대의 대박 신화에 과장이 섞여 있다는 점, 그리고 카작무스 매각 과정을 파고들수록 카자흐스탄 실력자들이 관련돼 있어 외교 문제를 감안할 때 깊이 들어가기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차용규 세무조사를 의욕적으로 시작한 국세청이 몇 달 뒤 두 손을 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자신의 지분은 일부라는 차씨의 소명을 받아들여 추징액은 7000억원에서 1600억원대로 깎였다. 그나마 과세 적부심은 그를 ‘국내 거주자로 볼 수 없다’고 결론 지었다.

 이후 뉴스에서 사라진 차용규가 다시 뉴스의 인물로 떠올랐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 경영진이 2004년 카작무스 지분을 헐값에 팔아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검찰은 1일 한국광물자원공사와 국세청을 전격 압수수색하며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기대가 크다. 검찰까지 나섰으니 의혹만 무성했던 차용규 실체가 벗겨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시민단체들이 고장 난 레코드처럼 10년 가까이 틀고 있는 ‘비자금설’도 이 기회에 진상이 명백히 밝혀지기를 바란다.

 사실 카작무스 지분을 성급히 정리한 삼성의 결정은 질책받을 소지가 많다. 매각 당시 톤(t)당 2000~3000달러였던 구리 값은 중국 수요가 급증하면서 2011년에는 1만 달러를 넘었다. 그 덕에 2005년 카작무스는 영국 증시에 상장되면서 주주들은 막대한 시세 차익을 올렸다. 원자재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한 성급한 매각은 삼성답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찜찜한 건 기업의 경영상 판단에 ‘배임죄(背任罪)’란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게 온당한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법원의 엄정한 실형선고에서 보듯 최근 기업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싸늘하다.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 분위기, 회사를 자신의 사조직이나 개인금고처럼 이용하며 전횡을 일삼은 일부 기업인들의 잘못된 행태가 만든 결과다. 기업인들의 불법 행위에 대한 엄정한 심판은 꼭 필요하다.

 그렇다 해도 기업의 경영활동에 시민단체들이 사사건건 배임의 명목으로 공격하고, 사법기관까지 나서 범죄의 영역으로 몰고 가는 건 좀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배임죄는 구성요건이 너무 광범위해 ‘걸면 걸리는 규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배임 무서워 의사 결정을 못 하겠다는 기업인들의 하소연이 나올 판이다. 그런 기업인에게 결재 서류 들고 시민단체와 검찰 먼저 찾아가라고 충고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나.

윤창희 경제부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