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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의 정치활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최근 한국노총은 산업별 노조위원장 및 시·도지부장 연석회의를 열고, 71년 선거에서 노총은 직능대표를 전국구대표로 내세우고, 11개 지역에서 노총간부를 입후보시킨다는 방침아래 ①정당과 정치인의 동향을 파악, 조직적 지원을 위한 행동통일을 기하고 ②노동자의 의사를 충실히 대변해줄 정당과 정치인을 선정지원하고 ③노총 시협의회에 「정치활동위」를 설치하여 노동자대표의 의회진출 대책을 수립, 실천키로 했다한다. 현행 노조법은 노조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고있으므로 노총이 정치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동법 제12조의 폐기가 필요한 데 노총은 정치활동의 전제가 되는 조건충족을 위해 우선 동조항의 폐기 투쟁부터 벌일 모양이다.
한국노총이 노동자대표의 의회진출을 위해 정치활동을 하겠다고 주장하게 된 것은 노조운동의 방향전환모색을 시준 하는 것이다. 선진국노조 운동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건대, 처음에 노조는 조합원간의 「우애단체」로서 발족했다가 다음에는 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권익을 신장키 위한 「직능 단체」로 변모했다. 이 직능단체가 정치적인 압력단체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노조가 정치적 압력을 가하기 위한 방법으로서는 ①노조를 기반으로 정당을 조직하여 의회진출을 시도하는 「타입」과 ②노조가 특정 정당과 흥정하여 노조의 주장을 의회에서 반영케 해주는 대신 선거 시에 그 정당을 밀어주는 「타입」의 두 가지가 나타났다. 이 두개 「타입」은 각각 일장일단이 있는 것으로서, 각각 그 국가의 사적전통과 정치적 현실을 고려에 넣지 않고서는 어느 편이 원칙상 옳고, 혹은 옳지 못하다는 일반론은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의 노조 운동이 정치적인 노동운동을 지향하면서 채택코자 하는 방법은 주로 후자인 것 같이 보인다. 노조운동을 정치운동화합에 있어서 노총이 상기 2개 방법 중 어느 것을 택하려는 것인가는 어디까지나 노총간부들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겨져야 할 일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크게 의문으로 생각하는 것은 과연 한국의 노조운동이 정치적 노동운동을 전개할 수 있을이 만큼 성숙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첫째로, 한국에서는 아직도 조직된 노동자의 수효보다는 조직되지 아니한 노동자의 수효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노조가 노동자의 정치적 의사를 정확히 대변하는 것이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노조의 조직과 운영이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고있어 노조는 마치 이를 지배하는 일부 노동귀족들의 사리사욕을 채워주는 발판으로서 전락한 느낌이 짙기 때문이다. 셋째로, 노조운동의 정치운동화는 노조가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 권익신장을 적극 도모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가기될 수 있는 것이라 하지만, 노조가 조합원의 입장으로 보아 거의 무용지장물처럼 되어있는 현재의 조건하에서 정치적 노동운동의 전개는 조합원에게 이보다는 화를 더 많이 주겠기 때문이다.
이상은 우리가 노조의 정치운동화를 시기상조로 생각하는 일반적 이유이지만 노총이 구상하고 있는 것처럼, 노조가 노동자대표의 의회진출을 의도한다고 하여 특정 정당과 결부한다고 하면, 노조는 반드시 그 정당의 사물로 변질·타락하기를 강요당할 것이요,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조합원의 반발로 노조는 사분 오열, 그 고유의 목적마저 추구하기 어렵게 될 것이나, 이런 의미에서 노조의 정치활동은 적어도 현 단계로서는 백해무일이 하다고 봄이 솔직하다. 노조간부는 노조를 제물로 바쳐 의회에 진출할 생각을 버리고 노조원의 권익향상에 주력함이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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