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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전당대회 방청기|한흥수<연세대조교수·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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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장소와 조명의 탓도 있었겠지만 묵직하고 차분한 대회였다. 외국의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대 정당의 전당대회라고 하면 대중에 대한 전시효과를 고려해서 빈틈없이 짜여진「매머드·쇼」쯤으로 연상하게끔 되었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것이 아닌가 싶어 관심이 끌렸다. 하기야 신민당의 지금까지의 파쟁으로 해서 적잖은 염증을 느껴왔기 때문에, 건전 야당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보면서도 호감보다는 쉽사리 회의가 짙었었다는 게 솔직한 말이다. 그러나 12시간동안의 신민당전당대회 광경을 지켜보는 사이에 이러한 회의가 얼마쯤 부드럽게 다듬어질 수 있었다. 재야세력의 집결체로서 나아갈 길을 개척할 가능력을 가진 정당, 내부의 투쟁과 협조를 통해 발전할 잠재적인 소지를 신민당이 갖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 것이다.
당헌개정을 심의하는 제1막에서 9인위의 단일개정안과 이에 반대하는 수정안을 가운데 놓고 쌍방이 설왕설래를 할 때만 해도, 신민당의 고질적인 편싸움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가 싶었다.
노련하고 여유 만만하기만 하던 대회의장이 표결방법을 유인하는 동안 은연중에 논출했던 편파성은 이러한 예상을 한결 굳혀주기까지 했다. 결국 당헌개정의 중대의안을 기립투표로 막을 내리고 만 것은 당직의 인선만을 무기명·비밀투표에 의한다는 당헌자체의 모순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내의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기 쉬운 전례를 만들어버린 셈이 되었다. 그렇지만 너무 따지다가 싸움만 한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그들 나름의 자세와 당 중심의 준거 때문에 편싸움은 벌어지지 않고 다수 의견에 따라 의안이 처리케 되었다.
전당대회에 나온 대의원들은 자기네의 지지자를 당수로 선출하는 것이 1차적인 관심사였으며 당헌개정은 그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8시부터 입장을 서둘러 바삐 몰아가는 이들의 악수교환은 계보와 표수의 예비점검이었으며 개회사를 낭독하는 의장은 제쳐놓고 「플래쉬」를 터뜨리는 사진기자들의「랜즈」촛점은 그 뒤에 가만히 앉아 있는 부총재단에 집중되었으며, 당헌개정때는 나타날 생각도 안 하던 24명의 대의원이 당수선거에는 때맞춰 왔으니 말이다.
제2막은「오픈·게임」(전당대회 의장선거)부터가「드릴」이 있었지만, 단번에 과반수의 2표가 넘어 제1「라운드」로 끝났다. 물론「메인·게임」은 예상한대로 한번에 당수를 결정하진 못했다. 그러나 제2「라운드」로 넘어 가기전 15분간의 신상발언과 정회는 천금과도 바꿈직한 양보와 타협과 협상의 순간들이어서 패자에게는 명예를 승자에게는 영광을 돌릴 수 있었다. 편싸움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 정도의 경기규칙과 정신만이라도 계속 지킬수 있다면 신민당의 성장은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제도보다 사람을 앞세우고 있는 현재의 경향, 당헌개정 때는 되는대로 표결하다가도 인선때는 주민등록증에 도장을 제시하라는등의 인선제일주의는「보스」중심의 전근대성을 탈피하기 어려운 요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소수 집단이 결합하여 다수 집단이 되지 못하고 손쉽게 우세집단에 영합하려는 심리는 뚜렷한 명분을 갖지 않는 한 배리로 지탄받을 우려가 있는 것이 아닐까, 혹은 적나라한 정치현실에서 다수파와의 타협은 필요할 때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쉽사리 판단이 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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