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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반공의 보루|김찬삼 여행기<대만에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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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원교향악 이룬 질펀한 곡창지대>
북회귀선을 지나 가의에서 대남으로 향했다. 아스팔트 길가의 논밭들은 경지가 잘 정리되어 있고 특히 크고 작은 수로들이 동서남북으로 잘 뻗어 있었다. 가의와 대남 사이의 가의평야는 곡창지대로서 질펀한 전원이 펼쳐지는데 숲 속에서는 곤충이며 새들이 우짖어 전원교향악을 이루고 있었다. 시골 동네에는 초가집이란 없고 벽돌에 기와를 씌운 집들이다. 대낮에 어떤 집엘 들르니 어떤 꼬부랑 할머니가 전족으로 마치「펭귄」처럼 뒤뚱뒤뚱 걸어나으며 반겼다. 집에는「텔리비젼」이 있었다. 이 대만에는「라디오」보다도「텔리비젼」이 더 많이 보급된 듯했다. 이것은 농촌까지도 풍족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도시와의 문화적인 차이가 크지 않았다.
대남은 1885년 대북으로 서울을 옮길 때까지인 3세기동안 정치·문화·상공업의 중심지로서 영화를 누리던 곳. 네덜란드의 통치때 세워진 요새적인 건물인 적의루는 이색적이었다. 심정지도가 있는데 이것은 유사시에 성밖으로 몰래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만든 지하 미로이다. 이 길이 대남서쪽 6·6km 지점에 있는 바닷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로테스크] 한 동굴형무소도 있다. 그런데 이 적의루는 벽돌과 중국식 기와로 되어 있는 [네덜란드]식 건축이다.

<반공·군사훈련 필수과목으로>
이것은 대만사상 이름높은 정성공에게 빼앗긴 뒤에는 그의 본거지로 쓰이었다고 하는데 비석에는 [네덜란드]와 청나라의 글씨가 반반씩 새겨져 있다. 민족 영웅으로 받드는 그를 기념하는 축전이 이 대남에서는 해마다 성대히 벌어진다고 한다.
대남 어느 여자학교에 들렀더니 교정에서는 여학생들이 구식총을 가지고 사격훈련을 하고 있었다. 기초훈련이 아니라 본격적인 전투훈련이었다. 대만은 지금 이렇게 여성들까지도 개병주의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여 있다.
대만교육에서는 공민과 (국정인 반공도덕중심) 체육과 더불어 군사훈련이 필수과목이라고 하니 [아테네] 적이 아니라「스파르타」적인 교육에 온힘을 기울이는 셈이다.

<삼엄한도시 고웅, 특수부대등 산재>
대만 제2의 도시인 고웅에는 일제 시대때의 신사의 조거 (문 같은 것), 삼도 연변의 석등룡을 비롯한 본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야릇했다. 더구나 의심스러운 것은 중화민국군의 영령을 이 본전에 그대로 안치한 것이었다. 하긴 일본의 유물을 고스란히 보존하는 일은 대만에서는 흔히 볼수 있으나 항일분쟁을 벌였던 그들이 일본의 잔재를 그대로 둔다는 것은 알고도 모를 일이다.
이 고웅 항구도시는 자연적인 훌륭한 항구로서 무역항과 군항을 겸하고 있는데 대만해협을 맡고있는 미 제7함대의 군함들이 보이는가 하면 중국의 함정들도 많이 있었다. 이곳엔 육해공군의 세 군관학교, 해병대 기지, 공수부대 또는 특수부대가 있다고 한다. 이 특수부대는 본토에 잠입하여 적을 살피고 파괴하며 선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해군가운데서도 매우 무서운 부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내의 고지에는 고사포 진지가 있는데 이 고지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이런데서 섣불리「카메라」를 만지다가는 붙들리기가 일쑤다. 이 항구는 경비때문에 거리의 인상이 매우 쌀쌀해 보이며 길가에는 공습소개도가 보였다. 대만해협이 불과 2백km의 넓이로 본토와 맞서고 있으니 매양공습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만일 전투가 벌어진다면 초음속「제트」기로는 눈 깜빡할 사이에 해협을 넘나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도시는 매우 긴장한 듯, 거리에는 군인들이 많이 보이고 군용 차량이며 군용기들의 소리가 또한 요란하다. 따라서 이곳은 대만 최대의 공장도시이기도 하여「러쉬·아워」에는 노무자들로 자전거며 버스가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어쨌든 대만은 활기를 띄고 있었다. 일하면서도 싸우는 나라가 바로 이 나라가 아닌가 했다.
대만에서는 어디서나 많이 눈에 띄는 것이「모망재초 광복대륙」이란 [슬로건]이다. 이것은 그 옛날의 중국춘추 전국시대 때 재나라 왕이 싸움에 져서 초라는 작은 마을에 도망가서 여기에다 성을 쌓고 군비를 다시 갖추고 훈련을 하여 마침내는 중국대륙을 도로 찾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초는 그왕이 피난했던 마을의 이름이니 대만에 비유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금문도등 보급엔 미함대 보호받고>
현재 기륭과 고웅의 두 군항을 보급기지로 하여 7∼8척의 함대가 대만 해협을 지키고 있는데 대만 본도에서 금문·마조도로 물자를 나르려면 여전히 제7함대의 보호를 받는다고 한다. 이 두섬은 알다시피 본토와의 거리가 불과 2천3백∼4천m밖에 안되는 곳에 있다.
9년전에는 중공에서 쏜 포탄이 하루에 최고 5만발 떨어졌으나 요즘은 포대에 1백발정도로서, 그나마도 선전문이 든 탄환이 더 많다고 한다. 기술이 바뀐 모양일까. 그런데 이 중국도 예로부터 전쟁이 그친 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세계의 창조자며 통치자는 아마도「주피터」가 아닌 군신인 모양인가. 어쨌든 「칼라일」의 말처럼 사람이란 모든 동물가운데서도 가장 더러운 동물, 즉 호전적인 동물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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