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처, 레이건 그레나다 침공 때 배신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1983년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의 의견을 무시하고 군사작전을 강행해 ‘정치적 연인’으로 불릴 정도로 가까웠던 두 사람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1일 기밀이 해제된 영국 총리실의 83년 문서에는 그레나다 문제를 두고 두 정상이 한밤에 신경전을 벌인 상황이 기록돼 있다. 83년 10월 19일 카리브해의 영연방 그레나다에서 군사 쿠데타로 정권이 전복됐다. 24일 밤 11시 워싱턴에서 대처에게 긴급 전문을 보냈다. 카리브해 인근 국가들이 미국의 군사 개입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몇 시간 전 미 대사와의 만찬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한 대처는 당황했지만 일단 “친애하는 론, 독립국가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이 될 수 있어요”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이를 “심각하게 고려하겠다”던 레이건은 불과 네 시간 뒤 다시 전문을 보내 군사력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대처는 즉시 “심각한 우려” “굉장한 불안” 등의 표현을 쓰며 “이미 늦긴 했지만, 다시 고려하라”고 답을 하고 보안 회선으로 레이건에게 전화해 직접 불쾌감을 전했다. 미국이 개입할 경우 여왕을 대리하는 그레나다의 총독이 살해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하지만 레이건은 아침이 되자마자 곧바로 해병대를 그레나다에 상륙시켰다.

 문서에는 이로 인해 대처가 큰 모욕감을 느꼈다고 돼 있다. 한 문서에는 레이건이 이틀 뒤인 26일 15분 동안의 전화 통화에서 대처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쩔쩔매는 상황도 나타나 있다. 레이건은 “내가 지금 런던에 있다면 (당신 관저로 찾아가서)일단 문 앞에 모자부터 던지겠다”고 말을 시작했다. 데일리메일은 “문을 열자마자 대처가 총을 쏠지 모르니 문 앞에 서 있지 않고 모자부터 던지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레이건은 친소련 정권 수립을 막기 위해 상황이 급박했고, 보안 유지가 필수였다는 설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미국이 오랜 기간 침공을 준비한 정황이 있었다고 영국 외무부 문서는 전하고 있다.

유지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