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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인 LAPD SWAT 대원' 찰스 조 경관

미주중앙

입력

LA경찰국(LAPD) 찰스 조(43·사진) 경관이 스와트(SWAT)에 몸담은 이유다. LAPD의 경관 수는 총 1만 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특수기동대(SWAT: Special Weapons And Tactics Team) 요원은 불과 60명. 매니저급으로 분류되는 루테넌트 2명과 수퍼바이저 6명을 합쳐도 68명에 불과하다.

올해로 18년 경력의 베테랑이 된 조 경관은 한국에서 태어나 2살 때 하와이로 이민 왔다. 캘스테이트 롱비치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뒤, 6년간 고교 카운슬러로 일했다.

어느 날 문득 '좀 더 활력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1996년, 무작정 LAPD에 뛰어들었고 이후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SWAT 대원까지 됐다. 그는 2008년 3월, '최초의 한인 LAPD SWAT 대원'이란 꿈을 이뤘다.

"한인은 LAPD에서 디텍티브(형사)나 내근요원으로 일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그래서 난 반대로 기회가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했다. '노(No)'라는 말은 절대 꺼내지 않았다."

어지간한 전국 주요도시 경찰국은 SWAT를 보유하고 있다. LAPD 메트로디비전의 SWAT는 그 중에서도 전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정예대원을 보유한, 'SWAT의 최고봉'으로 인정받고 있다.

선발 시 절차가 가장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때문이다. 1차 선발의 관문을 통과해도 12주 동안의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는 이가 매년 평균 50%에 불과하다. 조 경관이 지원했을 당시에도 100여 명에 가까운 지원자가 몰렸지만 단 14명만 뽑혔다. 이 가운데 훈련을 끝까지 견딘 대원은 조 경관을 포함해 7명뿐이었다.

최종 관문 통과 후에도 안심할 수 없다. 1년에 4차례씩 체력 시험을 봐서 두 번 이상 떨어지면 즉시 퇴출된다.

LAPD는 SWAT를 가장 먼저 운용한 경찰국이다. 지난 1967년 대럴 게이츠 당시 LA경찰국 수사관이 제안한 아이디어가 시발점이다.

1960년대 들어 범죄자들이 경찰과 민간인을 저격하는 사건이 빈번해졌고 1965년 와츠 지역에서 34명이 사살되고, 3400여 명이 체포된 와츠폭동이 터진 것이 SWAT 태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도시 폭력과 폭동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LAPD는 1967년 정예요원들로 SWAT를 처음으로 구성했다. SWAT는 6개 팀(squad)으로 구성돼 있다. 각 팀은 2개 소대로 나뉜다. 각 소대당 리더 한 명씩이 배치된다.

조 경관은 아직 일반 대원이다. 그는 SWAT 스쿠버팀 일원으로 해상작전에도 투입되며, 스쿠버다이빙, 사격, 협상, 폭발물 처리 분야 훈련시엔 교관 역할도 맡는다. 또 SWAT 대원들에게 태권도도 가르치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인 부인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둔 조 경관은 한인 후배 경관들에게 SWAT에 도전해 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SWAT 대원의 연봉은 생명수당을 포함, 최소 10만7610달러에서 시작된다. 일반 경관에 비해 5.5% 가량 많은 액수다.

SWAT 대원으로서 가장 힘들 때와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없이 답했다. "인질 상황이 벌어질 때가 가장 힘들다. 하지만 역으로 인질을 구출할 때 가장 큰 만족감을 느낀다."

원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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