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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문제는 아베 총리의 진정성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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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베 신조(安培晋三) 일본 총리가 연일 한국·중국과의 정상회담에 대한 희망을 피력해 주목되고 있다. 지난주 동남아 3개국 순방에 나선 아베 총리는 26일 싱가포르에서 행한 강연에서 한국에 대해 “일본과 더불어 미국의 동맹국으로 지역 안보의 토대를 이루는 관계며 경제도, 문화도 함께 걸어가는 관계”라고 규정한 뒤 “정상 간, 외무장관 간에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길 염원한다”고 말했다. 27일 필리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한국은 기본적인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며 “정상회담이 가능하게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에 대해서도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임을 강조하고 조속한 대화 재개를 희망했다.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중국과 해상 영유권 분쟁 중인 동남아 각국을 돌며 개헌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여론몰이에 나섰다. 그런 와중에 한·중과의 정상회담 희망을 피력한 것은 이중플레이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들이 정상회담은 물론이고 외교장관 회담조차 못 열고 있는 현실은 누가 보더라도 정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거사와 영토 분쟁에 대한 아베 내각의 인식이다. 지금 중·일 양국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한국과는 군대 위안부 등 과거사와 독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한·중 양국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과거사나 영토 문제와 관련해 적어도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말과 행동은 자제했어야 한다. 하지만 아베 내각은 온갖 망언과 자극적인 행동으로 한·중 국민의 감정에 큰 상처를 줬다.

 아베 총리가 진심으로 한·중과의 정상회담을 원한다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종전 60주년이 되는 다음달 15일이나 그 전후에 총리 자신은 물론이고 각료들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해서는 안 된다. 또 종전 60주년에 맞춰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에 버금가는 수준의 아베 담화를 통해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한다면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은 자연스럽게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