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새 고기값 15% 뚝, 사료값 10% 쑥 … 한우가 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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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용산 이마트에서 직원이 할인 판매하는 한우를 진열하고 있다. 한우농가는 가격 하락을 극복하기 위해 브랜드화에 나서고 있다. [강정현 기자]

경북 영주에서 한우 20두를 키우는 권헌진(50)씨는 올 초 인근 축산업자들이 시행 중인 ‘사료 공동구매’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농가들이 모여 사료를 대량 주문하면 구입비가 12~15%가량 싸진다. 권씨는 5년 전 축산업을 접고 다른 사업을 하다 지난해 말 다시 귀농했다. 그는 “2008년만 해도 25㎏ 사료 한 포대에 6800~7000원이었는데 올해는 1만1000원까지 치솟았다. 축산 환경이 몇 년 새 180도 달라져 있었다”고 말했다.

 한우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고기 값은 떨어지고 사료값은 꾸준히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현재 국내에서 사육 중인 한우는 모두 296만 마리로 적정두수 250만 마리를 크게 웃돈다. 이 때문에 한우 고기 도매가격은 ㎏당 1만1990원으로 1년 새 15%나 하락했다. 한우 사육 두수는 지난해 9월 약 314만 마리로 정점을 찍은 뒤 증가세는 꺾였으나 쇠고기 공급량이 늘면서 아직 고기값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실제 올 6~8월 도축됐거나 대기 중인 물량은 모두 24만1000마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만 마리(13.3%) 이상 많다.

 한우 사육에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사료 값은 국제 곡물가격이 오르면서 1년 새 10% 이상 급등했다. 성인이 된 소 한 마리는 한 달 평균 15만원어치의 사료를 먹어 치운다. 20마리를 키울 경우 사료값만 월 300만원씩 들어가는 것이다. 한우는 30개월 정도 자랐을 때 잡아야 육질과 마블링 상태가 최고에 달해 가장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육두수가 많아 출하가 지연될 경우 상품성이 떨어져 제 값을 받지 못하고, 그만큼 사료값도 더 들어 농가는 이중으로 손해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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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이 이렇게 되자 농가들은 원가 절감을 위해 백방으로 나서고 있다. 전국한우협회 경주시지부의 경우 2011년부터 발효사료 원료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농가의 출자를 받아 법인을 세운 뒤 발효사료 생산에 나선 것이다. 지역 축산농가들은 이 공장에서 생산된 발효사료 원료를 구입한 뒤 집에서 직접 청보리와 옥수수를 섞어 사료로 쓴다. 장상규(52) 경주시지부장은 “발효사료 원료를 집에서 섞어 쓰면 사료비를 30% 가까이 줄일 수 있다. 일이 많아지지만 치솟는 사료값을 감당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도축장과 직접 출하예약제를 맺기도 한다. 전국한우협회 영주시지부의 경우 김해·부경 공판장과 ‘일주일에 15두 출하’ 제휴를 맺었다. 송무찬(50) 영주시지부장은 “도축 대기 숫자가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소규모 농가들이 출하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출하 예약제를 맺은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와 지역 한우농가가 손잡고 브랜드 한우를 출하하는 곳도 있다. 전북 무진장축협은 지역 농가 350여 곳과 손 잡고 ‘장수 한우’ 매장을 이마트에 열었다. 농가에 송아지가 들어오면 거세부터 출하까지 축협이 관리해 최상의 품질일 때 마트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현재 이마트는 상주 상감한우, 합천 황토한우 등 지역 브랜드 10개를 122개 매장에서 판다. 롯데마트는 ‘안심한우’라는 통합 브랜드로 11개 지역의 브랜드 한우를 판매 중이다. 전국한우협회 관계자는 “축산농가 들이 자구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적정 마릿수 유지를 위한 장기 대책 등이 나와야 축산농가 위기의 근본적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글=장수(전북)=박태희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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