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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아이젠하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프랑스」연극의 공식전당 「코미디·프랑세즈」에서 상연중이었다.
「프랑스」대통령에게도 상례적인 인사를 보내는데, 그친 수많은 관중들이 갑자기 일제히 기립하더니 장내가 떠나갈듯 한 외국장군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유럽」대륙에 아직 전운이 짙게 깔려있던 어느날 「파리」에서의 극히 중대한 연합국 전략회의를 마치고 조용히 극장에 들어온 당시의 구주연합군 최고사령관「드와이트·D·아이젠하워」장군에게 외국 영웅에 지극히 냉담한 「파리장」들이 열광했던 것이다.
유난히 「핑크」색의 만년동안, 백만불 짜리 미소, 막 「스푼」으로 떠올린 바닷물처럼 해맑은 감청색의 눈동자는 바로 「아이크」의「트래이드·마크」로 통했다.
최고사령관 시절의 그가 숙소에 보초도 제대로 두지 않았다니 평화 장군으로서의 그의 체온을 짐작 할 수 있다.
69년 3윌28일 78세를 일기로 고향「애빌린」의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 「아이크」의 정치적 전성기는 52년에서 60년까지와 8년의 백악관 주인공 시절.
「아이크」는 군인으로선 미국 역사상 드믈게 대성했기만 정치가로서의 평점은 그리 높지않은 듯.
「아이젠하워」대통령 집권시는 「애덤즈」와 「덜레스」의 위세가 어떻게나 드높았는지「애덤즈」내정 대통령과 「덜레스」외교 대통령까지 합쳐 세 사람의 대통령이 공존했다고 일부에서 비꼬아댔다.
「아이크」는 학구적인데와는 거리가 꽤 멀었던 것 같다.
「타이프라이트」의 사용법은 숫제 몰랐으며 그의 유명한 대전회고록 『구주십자군』은 대부분 구술한 것을 측근이 받아써서 집대성됐다.
「아이크」를 논할 때「골프」에 의열을 빼놓을 수 없다.
한마디로 「골프」광이었으며 그의 외교는「골프」외교였다.
「아이크」와 한국과의 인연 또한 깊다.
46년초 군복을 입었을 때를 포함, 모두 세 차례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
「아이크」의 사격솜씨는 A급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욕실에서 쥐 한 마리를 발견. 권총으로 4, 5회 쏴댔으나 쥐의 목숨은 건재했다는「에피소드」도 있다.
「아이크」의 유족으로는 부인「메이미」여사와 외아들「존」, 그리고 장군의 생전 사랑을 독차지했던 「데이비드」가 있다.
「메이미」여사의 신혼 초 잔소리는 꽤 심했던 모양이나 「아이크」는 묵비권·거부권·일방적 퇴장권 행사로써 가정 평화를 지켰다.
아들「존」은 처음엔 거인의 가계에 충실한 나머지 군에 몸담아 중령까지 지냈으나 군을 물러나 외교전록에 투신, 지금 주「벨기에」미국대사로 있다.
「데이비드」군(21)은 조부가 자기 정치사상의 승승자로 키우다시피 할 「닉슨」대통령의 둘째딸「줄리」양과 결혼한 후에도 대학에서 정치학 공부를 하고 있다.
「아이크」는 생전 물욕이 없었기 때문에 유산은 그리 많지 않고 고작「게티스버그」농장 및 『구주십자군』의 판권과 유가족(부인) 연금을 남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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