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과 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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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도공작가 「아더·케슬러」의 명작으로 공산당의 소위 세뇌공작의 갖가지 수법을 폭로한 『정오의 암흑』이란 책이 있다. 구구절절이 몸서리치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보다 필경 몇 배나 더 원시적이고 참혹한 종류의 고문과 학대를 세 번에 걸쳐서 수많은 미군들이 겪었다.
한국전쟁 때 포로로 잡혔던 사람들과 우리 기억에 아직도 새로운 「푸에블로」 승무원들, 그리고 정오 아닌 『심야의 암흑』을 1백8일동안 겪고 어제 풀려 나온 헬리콥터 승무원 세 사람이 그렇다.
동란이 끝나고 미군인들이 포로교환으로 돌아왔을 때, 미국방성에서는 많은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포로로 잡혀간 미군이들이 그 『심야의 암흑』을 어떻게 견디어 냈는가를 다각도로 조사 연구했다. 영리하고 민감한 사람이 오히려 약하고, 약간 둔중한 듯 하면서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세다는 것이었다. 「케슬러」의 책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무서운 역경 속에서 오히려 익살과 「유머」로 일관한 사람들이 무난히 살아 남았다는 것이었다.
지난번 「푸에불로」 사건과 이번의 「헬리콥터」 사건을 통해서, 저들의 수작과 대결하는 수법의 한 「패턴」이 나타난 것 같다. 「푸에블로」 함장은 죄를 자인하지 않으면 부하들을 하나 하나씩 몰살시키겠다는 협박을 받고는, 저들이 요구하는 대로 소위 「자인」이라는 것을 했다.
승무원들을 그 암흑에서 데려내오기 위해서 「유엔」군측 대표는 공산측이 만든 사과문서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 승무원들이 우리 손으로 안전하게 넘어 오자마자 그 사과문서의 내용이 사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무가치한 물건이라고 부인해 버렸다. 이번에도 똑같은 식으로 「헬리콥터」 승무원들을 살려냈다.
사과문서에 서명한 것은 승무원들을 데려내와야겠다는 『인도적 입장에서 취한 태도』였다고 「애덤즈」 소장이 말했다. 사실은 처음부터 명백했다. 무장도 하지 않은 잠자리 「헬리콥터」가 고의로 적지를 침공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 「패턴」이 『t심야의 암흑』에 대한 최선책인지 어떤지는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와 생명의 존귀를 생각게 해주는, 인도적 태도임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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