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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연서원문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이 그리 많은편은 못된다. 그것도 시간이 갈수록점점 줄어들어 가고만 있다.
우리의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으뜸 가는것의 하나로 이조 역대의 주자본을 들 수 있겠다.이미 주지되고 있는 바와 같이 세계최초로 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어 내기 시작한 것은 고려의 고종때부터 였으며, 독일의「구텐베르크」가 인쇄술울 발명한 1450년 보다 약 2백여년을앞서고 있다. 그리하여 이 인쇄기술은 이조에 계승되어 태종때에 주조된 계미자를 위시하여세종조의 경자자·갑인자 등 여려종류의 아름다운 활자체를 사용한 호화판 서책들이 생산되어 왔었다.
그러나 여러차례의 전란으로 말미암아 이 귀중한 우리의 문화재들이 수없이 파괴되고 분실 되었으며 특히 임진란은 우리의 문헌사상 가장 큰피해와 손실을 가져다 주었다. 오늘날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서책중 임진전판은 극히 귀하여 그 내용은 우선 차치하고라도 일단 진본으로 간주되고 있다. 특히 고활자본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난해 나는 전국의 서원문고를 답사하던 중 이 귀한 임진전판으로만 구성된 문고 하나를보고 퍽 기뻐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경북 성주에 있는 회연서원문고 였다. 이 서원은 한강정술을 향사한 서원으로 임난후인 인조 5년에 설립 되었으나 이 서원에 소장된 장서는 한강의 개인서재였던 무흘서재본만을 그대로 보존하여 왔기 때문에 임란후의 서책들은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문고본은 모두가 한강의 수택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중에는 한강의 친필본도 몇 종 있었다. 주자본으로는 세종때의 경자자, 갑인자본을 위시하여 매우 희귀한 성종년간의계축자본등 도합 39종 4백30책을 소장하고 있어 전체 장서의 약7할을 점하고 있었다.
아무튼 나는 이 회연문고본을 보고, 광부가 노다지라도 발견한 것 같은 흐뭇한 감정과 기쁨을 금치 못하였었다.
그러나 한가지 보는 사람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이 귀중본들의 보관상태가 너무도 허술한 것이었다.
서고도 없이 얇은 송판으로 아무렇게나짠 상자속에 책들은 무질서하게 마구 넣어져 있었고, 사방에는 쥐구멍이 나있어 쥐들의 은신처가 되고 있었다. 그것도 서원경내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고지기 집 마루에 방치해 두고 있었다.
나는 그후 서울에 돌아온 뒤에도 늘 이 회연문고의 허술한 보관이 염려되곤 하였는데, 얼마전 이 문고본이 화재로 몽땅 회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문화재의 또다른 한덩어리가 무너져간 셈이다. 임신란이전의 책으로 구성된 회연서원문고본도 이제는 다시 볼 수없게되었으니 그때 찍어온 사진이라도 뒤적이며 이 허전한 마음을 달래보는 길밖에는 없게되었나보다. 이춘희<성대교수·도서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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