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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총리 "세종청사 멋만 실컷 부려, 잘못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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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홍원 국무총리가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 정부 세종청사. 왼쪽 건물에 총리실이 있고 오른쪽 방향으로 기재부·국토부 등이 입주해 있다. 가운데 육교처럼 보이는 것이 각 부처로 연결되는 통로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홍원 국무총리

정홍원 국무총리가 정부 세종청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 총리는 23일 출입기자 오찬간담회에서 “건물은 미와 실용성이 (함께) 있어야 한다. 용을 형상화했다는데, (세종청사는) 하늘에서 봐야 용이지 땅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어 “청사가 실용성이 없어 끝에서 끝까지 가려면 몇십 분 걸리는데, 이건 정말 잘못된 것”이라며 “멋만 실컷 부렸지 실용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세종청사는 용 모양의 길쭉한 건물들이 다 지어질 경우 길이가 3.5㎞에 달한다. 성인이 한 시간 가까이 걸어야 청사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다. 지난해 말 완공돼 6개 부처가 입주해 있는 1단계 구간만 해도 1동의 총리실에서 6동의 환경부까지 걸어가는 데 최소 20분 이상 걸린다.

 정부 세종청사는 2007년 국제현상설계공모전 당선작이다. 당시 국내 설계사무소인 해안건축이 ‘플랫시티(flat city), 링크시티(link city), 제로시티(zero city)’를 주제로 설계한 작품이다. 해안건축의 윤세한 대표는 “세종시의 자연환경이 어울리도록 높지 않게(flat) 건물을 지어 서로 연결(link)한 자연친화적 도시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설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해안건축의 작품은 ‘저층 일체형인 중심행정타운 마스터플랜에 충실하면서도 지면과 지붕의 조경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해 친환경적이면서 조형성이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용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총리실을 시작으로 옥상에 꽃과 나무를 심어 조성한 3.5㎞의 옥상 정원길도 주민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설계 의도는 준공하자마자 수포로 돌아갔다. 정부청사가 보안시설이라 주민들에게 개방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옥상정원으로 올라갈 수 있는 1동 입구 건물은 완성된 채로 폐쇄돼 있다.

 세종청사 건물에 대한 보안 문제도 수시로 지적된다. 세종청사 1동 3층에 있는 총리 집무실은 호수공원 쪽으로 창을 냈다. 문제는 집무실에서 수십m 밖에 아파트가 지어졌다는 점이다. 누군가 작심하면 총리를 저격할 수도 있는 위치와 높이가 된다는 얘기다. 총리실 4층에는 대통령 집무실도 있다. 국무회의가 세종에서 열릴 때 대통령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총리실에 따르면 용이 똬리를 튼 모양의 세종청사 안쪽으로 수십 층 규모의 상가들이 들어올 예정이었지만 국가정보원에서 이를 모두 취소시켰다고 한다. 상가가 올라갈 경우 대통령 집무실이 저격에 완전 노출되는 문제가 결정적이었다는 게 후문이다.

 보안은 총리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주요 결정을 내리는 모든 부처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이 때문에 안전행정부 세종청사관리소는 이달 말까지 세종청사 북쪽 유리창 전부에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도록 보안필름을 부착할 예정이다. 총리실 바로 옆인 2동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우 기업을 대상으로 현장조사를 나가고 심의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는 업무 성격상 보안이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4동 기획재정부 역시 정부 예산안 등 경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리는 곳이다. 하지만 청사 옆 편도 2차선 도로 건너편에 20층이 넘는 고층아파트들이 즐비하다.

 공정위 관계자는 “누군가가 망원경으로 내려다볼 경우 서류의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보일 판국”이라며 “플랫시티라는 당초 개념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설계”라고 말했다.

세종=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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