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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박물관에 '때 타월' 을 전시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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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승훈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얼마 전 나는 특별전에서 오래된 ‘때 타월’을 전시하겠다고 말했다. 이 용감한 공언에 대해 주변에선 얼토당토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예상했던 반응이라 놀랄 게 없었다. 하지만 이번 특별전은 부산사람의 생활사와 유관한 전시였으므로 나의 시도는 큰 제동 없이 실현되었다. 이즈음 때 타월을 전시한 배경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리라. 박물관은 최고의 명품을 전시하는 곳이란 고정관념을 가진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특수한 역사’보다 ‘보편적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왕조사를 주로 배우면서 자란 우리들은 역사를 왕권 교체로 생각한다. 하지만 당대 시공간을 가득 채운 사람은 ‘대중’이요, 그들을 좌우한 것은 ‘생활’이었다. 대중의 삶이 빠진 역사가 부실한 만큼 명품만으로 가득 찬 박물관도 공허하다. 이 화려한 치장에 생기를 불어넣는 비결은 역시 대중들이 쓰던 보편적 유물을 전시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때 타월은 정말 안성맞춤이다.

 매일 샤워하고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을 찾는 현대인들에게 정치만큼이나 목욕도 중요하다. 대중목욕탕에 들어서면 늘 ‘때와의 전쟁’을 벌이는 우리나라 사람을 목격할 수 있다. 이때 사용하는 무기는 ‘때 타월’이다. 아, 때 타월은 목욕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꾼 물건이었다. 한편 온천수를 이용한 대중목욕탕의 등장도 목욕의 역사에서 초유의 사건이었다. 20세기 초반 온수에 전신욕을 할 수 있는 공중목욕탕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러나 이 신세계에도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있었으니 쉽게 불어나는 ‘때’였다.

 일제가 보건과 위생을 강조하면서 식민지 조선 사람들의 청결의식이 강화되었다. 산업화 시기 비누·치약·샴푸 등 세정 용품이 등장하여 ‘깨끗한 신체’에 대한 관념이 더욱 공고해졌다. 때를 제거하고 싶은 욕망도 커져만 갔다. 전후소설인 김원일의 『깨끗한 몸』을 읽어보면 길남이에게 목욕은 거의 고문이었다. 청결벽이 있는 어머니는 길남이의 때를 벗기고 또 벗긴다. ‘이태리 타월’만 있었더라도…. 하지만 때에 대한 고민은 곧 해결되었다. 1962년 부산에서 처음으로 직물공장을 운영하던 김필곤이 비스코스 레이온 소재를 꼬아 이태리 타월을 만든 것이다. 까칠하지만 완벽하게 때를 미는 이태리 타월은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를 특허청에 등록한 그는 부산의 호텔 두 곳을 사들일 정도로 부자가 됐다.

 그런데 나는 이런 때 타월의 사회사보다는 가족사를 상기시키고 싶었다. 전시에는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하며, 유물도 감성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때 타월은 가족들의 사랑을 회상시켜 준다. 나 역시 그렇다. 아버지는 어린 내 몸을 때 타월로 깨끗이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황이 역전되었다. 아버지가 뇌종양에 걸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고등학생인 나는 형과 함께 우리집 목욕탕에서 아버지를 부축하여 때를 밀어드렸다. 아버지는 『깨끗한 몸』에 등장하는 어머니처럼 거의 청결벽이 있으신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때 타월이 지나갈 때마다 검은 때가 나왔다. 몹쓸 병이 만든 때였다. 아니, 삶과 죽음, 고통과 눈물이 뒤범벅된 때였다. 그 병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5년이 지났건만 나는 형 손에 있던 빨간색 때 타월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제 때 타월은 내 손에 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아들의 등을 밀어준다. 키가 나만큼 자란 아들은 대중목욕탕에 가려 하지 않는다. 집에서 때를 밀어주면서 2차 성징도, 아토피의 증세도 확인한다. 매일 바쁜 우리 부자는 그나마 때 타월을 통해서 부자의 혈연을 느낀다. 때 타월은 아버지에게서 나로, 다시 아들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다.

 박물관은 유물로 역사를 재현하는 공간이다. 미래의 박물관은 사람의 감성과 기억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전시가 꾸며질 것이다. 유물을 두고 폼생폼사를 따지지 말자. 때 타월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유물로도 얼마든지 크고 눈부신 역사성을 도출할 수 있다. 작은 것으로 크게 보는 통 큰 박물관이 될 수 있다.

유승훈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필자는 경희대 행정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문학박사, 역사민속학자, 저서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