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우리 소관 아닌데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

‘체포왕’. 2년 전 개봉한 국내 영화다. 경찰들이 검거 실적을 놓고 치열하게, 때론 치졸하게 겨루는 얘기다. 영화 말미에 특이한 장면이 하나 나온다. 한 남성이 자살한다며 한강대교 아치 위에 올라가 있다. 밑에선 소방대원이 측정기로 정확히 다리 중간을 재고는 분필로 경계선을 표시한다. 이 광경을 용산경찰서와 동작경찰서에서 나온 형사들이 가슴을 졸이며 지켜본다. 곧이어 남성의 위치와 경계선을 가늠하던 소방대원이 “용산”을 외친다. 그러자 용산경찰서 팀장이 급히 아치 위로 오른다. 자살한다던 남성이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하자 이 팀장 왈, “그래 가까이 안 갈 테니까 네가 좀 뒤로 가면 안 되겠니.”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 남성을 바라보던 소방대원이 이번엔 “동작”을 외친다. 그러자 팀장은 웃으며 동작경찰서 형사들에게 “이제부턴 니들이 알아서 해”라고 소리친다. 경찰서 간 치열한 관할구역 다툼을 묘사한 장면이다. 귀찮은 자살 시도 사건을 맡기 싫어서 책임 떠넘기기를 한 것이다. 물론 영화답게 과장을 꽤 섞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전혀 없는 일은 아니다. 실제로 경찰서 간에는 크고 작은 관할 다툼이 있어 왔다. 생색나는 사건은 서로 맡으려 하지만 귀찮고 빛 안 나는 사건은 가급적 피해 온 게 사실이다.

 영화와 관할 다툼 얘기를 길게 꺼낸 건 지난주 발생한 참사 때문이다. 태안의 해병대 사칭 캠프에서 훈련받던 고교생 5명이 부실한 안전 관리 탓에 숨진 사고 말이다. 사고 초기 정부부처와 지자체들이 내놓은 반응을 보며 ‘체포왕’을 떠올렸다. 우선 책임부터 피하고 보자는 모습들이 영화와 많이 닮아서다.

 사고 직후 태안군청 관계자는 “우리는 유스호스텔 건물 허가만 해준다. 해병대 캠프 같은 사항은 해경에서 허가를 관장한다”고 했다. 해경은 “전체 캠프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수상레저 사업 부문만 면허를 내준다. 수영을 하다가 사고가 난 부분은 소관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정부 부처도 마찬가지. 수련시설 분야는 여성가족부 소관이라고 떠미는 교육부, 법적 근거가 없어 캠프시설을 규제하기 어렵다는 여성가족부가 그랬다. 레저를 관장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소관에 애매한 부분이 있다는 어정쩡한 반응이었다.

 사고는 났는데 누구 하나 내 소관, 내 책임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뒤늦게 해병대 사칭 캠프 참여를 금지한다느니, 미인증 캠프는 폐쇄한다느니 하는 ‘사후 약방문’ 대책에만 열을 올릴 뿐이다. 소관도 아니라며 대책은 어떻게 내놓는 건지 의아하다.

 물론 공공기관에서 소관과 책임을 따지는 건 필요하다. 불필요한 중복에 따른 행정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안전, 그것도 아이들 안전에 관한 거라면 얘기는 다르다. 약간의 관련이라도 있어 보이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앞다퉈 들여다보고 챙겨야 한다. 이중 삼중으로 따지고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