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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직불카드는 '찬밥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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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직불카드 활성화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이 꼭 이 꼴이다. 소비자들은 직불카드를 받는 곳이 없어 불편해서 못 쓰겠다고 한다.

반면 업체들은 쓰는 소비자들이 없으니 직불카드용 결제 시스템을 굳이 갖출 이유가 없다고 변명한다.

정부는 올해부터 직불카드 사용분에 대해선 소득공제율을 일반 신용카드보다 확대하고 복권 당첨의 기회도 배로 늘려주겠다고 한다. 바람직한 신용카드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란다.

하지만 이런 조치만으론 충분치 않다. 잔뜩 꼬여 있는 문제의 실마리부터 풀어야 한다. 우선 소비자들은 직불카드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선 그간 익숙했던 외상 소비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업체들도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당장 매출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직불카드 결제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부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소비자와 업체들이 변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때까진 직불카드와 유사한 이른바 '체크카드'에도 소득공제 확대 혜택을 주는 게 방법이다.

직불카드를 쓰는 게 왜 좋은지, 못받겠다는 이유는 뭔지, 해결책은 없는지…. 직불카드와 관련된 모든 궁금증을 풀어본다.

좋기는 한데

*** 연회비·수수료 없고 소득공제 30%까지

직불카드는 좋다.

돈이 당장 없어도 물건을 외상으로 살 수 있는 신용카드와 달리 직불카드는 은행에 넣어둔 예금 범위 내에서만 쓸 수 있다. 방만한 소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셈이다.

흔히 직불카드를 예금 인출기능만 있는 현금카드로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신용카드와 마찬가지로 물건을 살 때도 쓸 수 있는데 다만 결제와 동시에 예금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이 신용카드와 다른 점이다.

그래서 직불카드는 은행에 통장만 있으면 나이나 신용도와 상관없이 누구든 만들 수 있다. 만 20세 이상에게만 발급되는 신용카드와 달리 청소년들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용돈카드'용으로 적당하다.

직불카드는 현금서비스, 할부구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수수료를 물 필요가 없다. 연회비도 없다. 카드를 받는 업체 입장에서도 카드회사에 내는 수수료가 1~2%로 일반 신용카드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직불카드는 유용한 세테크 수단이기도 하다. 연말정산 때 신용카드의 경우 총 급여의 10%를 넘는 사용액 중 20%를 소득에서 공제받지만 직불카드는 30%가 공제된다.

예컨대 연봉이 5천만원인 근로자가 올 한해 동안 신용카드로 1천만원, 직불카드로 5백만원을 쓴다면 소득공제액은 2백33만3천원(총급여의 10%를 넘는 1천만원 중 신용카드 사용분 6백67만원×20%+직불카드 사용분 3백33만원×30%)이 된다. 만약 이 근로자가 1천5백만원을 전부 신용카드로 쓴다면 2백만원(1천만원×20%)을 공제받는데 그치고, 반대로 모두 직불카드로 쓴다면 공제액은 3백만원(1천만원×30%)이 된다.

국세청이 실시하는 카드복권 추첨에서도 직불카드를 쓰면 신용카드보다 두배 많은 기회를 갖게 된다. 매달 국세청은 전달 카드 사용분에 대해 날짜와 시간 순서로 번호를 매겨 추첨을 실시하는데 직불카드의 경우 한 번을 써도 번호를 두 개씩 주기 때문이다. 카드복권의 경우 1억원(1등)부터 1만원(6등)까지 상금을 준다.

한편 직불카드는 쓸 때마다 소비자가 직접 계산기 형태의 핀패드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게 돼 있어 요즘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신용카드 도용사고를 막을 수 있다.

안받아주니

*** 할인점·서점·홈쇼핑 사고싶어도 못사고

직불카드는 나쁘다.

우선 사용할 수 있는 곳이 극히 적다. 백화점.할인점 등 소비자들이 카드를 많이 이용할 만한 대형 업체 51곳을 조사해 봤더니 그중 열두곳만 직불카드를 받고 있었다.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할 만한 외식업체.놀이공원.서점 등은 직불카드를 받는 곳이 거의 없다.

고객을 위한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다고 몰아붙이자니 업체들도 할 말은 있다. 사실 작은 가게들은 겸용 단말기 외에 직불카드용 핀패드만 설치하면 되므로 비용 부담이 별로 없다.

하지만 대형 업체에선 직불카드를 받으려면 판매시점 정보관리(POS)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직불카드를 받지 않는 A마트 관계자는 "직불카드를 쓰겠다는 고객이 별로 없어 시스템을 고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업체측이 직불카드를 받더라도 직불카드로 인한 매출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지난달 매출 중 직불카드로 결제된 비중은 0.1%에 불과했다.

직불카드를 전혀 받지 않는 인터넷 쇼핑몰, 홈쇼핑 업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들 업체가 직불카드를 받자면 고객이 비밀번호를 직접 누를 수 있는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깔아야 하는데 직불카드 고객이 적을 것이란 생각에 투자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카드회사(은행)들 역시 직불카드를 열심히 발급하거나 가맹업체를 늘릴 의욕이 없다. 직불카드는 소비자들에게 받는 수수료나 연회비가 전혀 없어 가맹업체에서 받는 수수료가 수익의 전부인데 그나마 그중 85%를 은행과 가맹업체간 결제를 중개하는 회사들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한편 직불카드는 사용시간에도 제한이 있다.24시간 쓸 수 있는 신용카드와 달리 은행 공동망을 이용해 결제되기 때문에 이 망이 가동되는 오전 8시~오후 11시30분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

대안은 없나

*** 예금액 + 신용기능 체크카드 활용을

대안은 체크카드다.

체크카드는 직불카드와 마찬가지로 예금의 범위 내에서만 쓸 수 있다. 본인이 원할 경우 50만원까지 외상으로 살 수 있게 신용기능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신용기능 없이 사용하고 있다.

직불카드와 마찬가지로 현금서비스, 할부구매가 안되기 때문에 수수료나 연회비도 없다. 은행에 예금계좌가 있고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든 발급받을 수 있다.

직불카드가 몇 군데 되지 않는 직불카드 가맹점에서만 쓸 수 있는 것과 달리 체크카드는 인터넷 쇼핑몰, 홈쇼핑 업체를 포함해 일반적인 신용카드 가맹점이면 어디서든 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직불카드의 건전함과 신용카드의 편리함을 동시에 갖춘 체크카드이지만 문제는 있다. 정부가 지난해 직불카드의 소득공제 확대 방침을 발표했을 때 고객과 카드회사들은 체크카드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도 체크카드에 직불카드와 동일한 혜택을 줄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고객들의 의견은 분명하다. 어차피 소득공제 확대조치가 건전한 소비문화를 유도하자는 취지라면 체크카드에도 동일한 혜택을 주는 게 맞다는 것이다.

글=신예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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