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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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광신으로 말썽이 빚어진 세태에 어울릴 화제에서 한 둘 골라보았다.
요즘의 인왕산은 재2의 계룡산인 느낌이 짙다. 그러자니 군신이 웅성대기 마련이겠으나 그가운데서도<선바위>는 가히 최고신격이다. 산신이어서 이른바<아기바위>다. 그러나 그에못지 않을 산신암이 또 하나있다. 바로 선바위 왼쪽뒤편에 사람이 앙와한 듯한 거암이 있고그 하체부에 동혈이있다. 후미진곳인데다 분뇨로 위장되어있어 부정성역이라 할만한 곳이다.
사람 두셋을 품음직한 굴혈속엔 여성원리의 성체가 도사려있고 그주변엔 촛불자국이며 치성의 자취가 역연하다. 출산순간을 모사한 여성석상이 산신으로 숭앙되던 신라이래의 민간신앙이다.
몇년전 일이다. 여기와서 아기를빌었다는 대학동창부부를 만난적이있다. 모종합병원산부인과에서 부인이받았던 불임수술의 보람이없자 그들은 함께 이곳을 찾았던것이다. 휘황한조명밑의 수술대나 어둑한 비의의 동혈이나 그부부의 <에트스>속에선 같은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수술실의 조명이, 바로 그들이 이곳에 이르는길을 비친것이다.
과학의벽이 그들을 이도시속의 비경에, 현대속의 원시에 들게 한것이다. 거기서 그들은 막혀버린 생의 비상구를 찾은것이다.
더 처연한 비상구 얘기가있다.
구파발을지나 약 한마장. 문산가도의 길섶에 목 떨어진 <돌미륵>이 서있다. 임난때 그일대에서 벌어졌던 이른바 벽제관의 싸움에서 왜군을 물리친 수훈의 여신이다. 멀리 동쪽에 솟온 북한산 노적봉을 볏가리로 가리고 그 골짝을 타고 내리는 냇물에 횟가루를 뿌려 쌀뜨물인양 가장하였다. 그리고는 침략의 무리들에게 거기 수천의 우리정병이있다고 정보를 퍼뜨렸던것이다. 그들이 혼비백산한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곳 싸움에서 낙마끝에 겨우목숨을 건져 패주하였다는 명장 이여송으론 미치지 못할 지장이다.
이제 그겨레의 수호신은 머리가 떨어져 없다. 고작해야 차량들의 먼지가 그의 상처난 육신을 매만지고 있을뿐이다.
하지만 머리가 됨직한 돌을 굳이 먼 북한산 골짝에서 줘워다간 〈미륵〉목에 얹어 주었다는 아주머니가 있다. 한두번아닌 몇번을 두고…. 6·25때 장단에서 남하한 이래 종무소식인,자식들과의 재회를 비는 한단장의 모정이 미륵할미에게 믿음을 바친것이다.
따져보면 목이 부러진것은 우리의 역사적 현실이 아닐까. 그래서 부서진 미륵의 목에 돌을 얹으며 여인은 그 상흔의 역사를 진무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자식의 목을 껴 안듯…. 가령 여인의 그 행위가 미로에 든 짓이라 치자. 하지만 여인을 그곳으로 휘몰아 간것은 바로 역사의벽이다. 그 미로가 바로 역사의벽에 인간이 뚫은 비상구다.
과학과 역사의 벽에 감금되어 미신속에서 길을 구하던 두 여인. 그들은 자식을, 다음 세대를 기구한 것이다. 미래를 갈구한 것이다.
이 절대절명의 불합리에 눈뜨지 않는한, 인간의 합리란 부서진 안경일 뿐이다.김열규<서강대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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