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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칼럼] 중년 사망 주범은 간암·간경화 … 간염 못 다스려 병 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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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0대 사망 원인 1위는 암이다. 그중 간암이 가장 많다. 간암의 90%가 간경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고려해 간암과 간경화로 인한 사망자까지 더한다면 그 수는 더 많아진다. 이는 우리나라 중년의 주요 사망 원인이 만성간질환, 즉 간암과 간경화라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간암연구학회가 2010년 중앙암등록본부와 공동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간암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나이는 57세다. 만성간질환이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3~4배 많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가족을 부양하는 버팀목이자, 사회의 숙련되고 경험 많은 경제 활동 연령층이 간암과 간경화 때문에 쓰러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만성간질환의 원인을 살펴보면 해답이 보인다. 우리나라 간경화와 간암 원인의 80~90%는 만성 B형과 C형 간염이다. 다행스럽게도 두 가지 간염은 매우 효과적인 치료법이 개발됐다. 간경화로 진행된 경우에도 초기에 원인 간염을 치료하면 장기간에 걸쳐 회복할 수 있으며, 간암 발병률을 50% 정도 낮출 수 있다.

문제는 개인과 사회 인식이다. 간염 환자는 사회적 편견과 불이익이 두려워 병을 숨기거나 근거 없이 스스로를 비활동성 간염이라고 자의적으로 판단해 병이 심각해질 때까지 방치한다. 사회는 B형 간염 예방백신이 개발된 후 30여 년이 흐르면서 이미 해결된 질병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B형 간염의 주된 전염 경로가 신생아 때의 수직감염이고, 50대 후반에 간경화와 간암이 많이 발생해 문제가 발생하기까지 50~60년의 시차가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예방백신을 통해 간경화와 간암 발생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시기는 20~30년 후일 것이다.

자신이 만성 B형 간염과 C형 간염에 걸렸다는 사실을 아는 환자도 각각 75%와 3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간염의 위험성을 오랫동안 간과하고 지냈음을 시사한다. 지금부터라도 간경변·간암 같은 심각한 간질환을 예방하려면 간염의 인식 제고부터 바꿔야 한다.

첫째, 간경화 환자에게는 효과적인 항바이러스 치료에 대한 급여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 간경화 환자는 간암 발생률이 간경화가 없는 사람보다 200배 이상 높다. 그러나 적절한 항바이러스 치료는 간암 발생률을 50% 정도 낮출 수 있다.

둘째, 간암 감시검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간암이 진행된 상태로 진단된 경우 평균 생존 기간이 1년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조기에 진단된 간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70~80%로 상당히 높다.

마지막으로 C형 간염 검사를 생애전환기 전 국민 건강검진에 포함시켜야 한다. C형 간염은 중년기 1회 검사로 대부분 찾아낼 수 있다. C형 간염은 수개월간 단기간 치료로 3분의 2 이상 완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선별검사의 중요성이 매우 높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바이러스성 간염의 인지도를 높이고 치료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7월 28일을 ‘세계 간염의 날(World Hepatitis Day)’로 지정했다. 우리 사회도 이날의 의미를 되새겨 심각한 간질환 환자가 줄어들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임영석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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