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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이창|미극작가「아더·밀러」부부의기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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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6면

미국의 극작가「아더·밀러」와 사우작가인 그의부인「인지·모라드」 는 처음으로 같이 『러시아와 러시아인』에 관한 그들의 관찰을 공개하고 있다. 오는10월「바이킹」사에서 출간될『인·러시아』(소련에서) 는 정치적인 국가주의나 문화적인 당파심에서 쓴 것이 아니다. 「밀러」는 「하퍼즈」 지의 42「페이지」에달하는 특집여행기에서 자기들은 『「러시아」인의 문화의식을 밑받침하는 「이미지」,소설 시 그림은 인상들』을 애기한다고 밝혔다.
소련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미국작가인「밀러」의 최근 소련여행에는 자유릅게 소련사람과 만날수있고 일상생활문제들로부터 자유와 발전의 개념에 이르는 모든 문제에 대한 관념을 변화시킬 특별한 기회가 주어졌었다.

<프랑스를 몹시동경>
「레닌그라드」 로부터 「타슈켄트」에 이른는 여행에서 겪은 「밀러」의 상세한 경ㅇ험들은 모든 부면에서의 경험, 때때로 「유머러스」하고 어떤때는 우울하게 정부관리·작가·일반시민과의 접촉을 기술하고있다.
「인지·모라드」의 사진들은 「러시아」 소설에 나오는 음침한 뒷거리와 시골풍경을 잡았으며, 만나는 작가와 예술가들의 인상을 담고 있다. 「하퍼즈」 지는 사상처음으로 천연색사진들을 광범히싣고 있다. 「밀러」 는오는길에추운 「모스크바」의거리에 서있는 「트럭」 운전사가 공사장에 짐을 내리는 동안을 이용해서 책을 읽고 있는것을 보고, 가까이 접근 해서 그책이 희곡이라는 것을 보고 놀랐다.
「에렌부르크」 는 말했다.
『그것은 우리가 만든것입니다. 우리가 독자를 만든겁니다.』
그러나 명백히 그는 이문학열과 문학부분의 발전이 소련인을 지배하는 문제들을 해결했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의 방벽들에는 「피카소」의 작품들이 걸렸고 완전히 「프랑스」 풍의 조각들로 가득차 어떤 유파를 소개하는 미술관의 특별실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뿐만아니라 대부분의 교양있는 소련사람이 「프랑스」를 사랑했다.

<겪은고통 못잊고>
그러나『소련사람들은 제정 「러시아」 시대로부터 혹독한 정치에서 견뎌난때문인지, 눈의 바다를 연장시키는 엄청난 대지에서 살아온 탓인지 누구나 그들의 정치적인 적대감정의 밑바닥에는 애국심이랄지 어렴풋한 열망의 감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밀러」는 말한다.
「밀러」가 만난 사람가운데 하나인 「시베리아」 느동수용소로 가다가 죽은시인「오십·만델슈탐」 의 미망인은 서헐와의 비교를 질문받았을때 이렇게말한다.
『당신은 소련인이 겪은 것을 기억 하십시오. 소련인의 고통은 어디다 비할수 없는겁니다.』
언젠가 「밀러」 가 연극을 볼 때, 너무나 감상적이었던 여자 안내원은 설명은 않고 혼자서 훌쩍였다. 설명을 요구하자 미국을 여러번 구경한 일이있다는 그녀는 『자신의 이익만 쫓는 미국인들과 당신은 어떻게 견디지요』 하고 묻는것이었다. 자기중심적 사고는 소련에도 뿌디깊은 것이었다.
「개인행복의추구」 는 소련인의 생각도, 대부분의 세계인의 생각도 아니었다.

<서방문화 모방 느낌>
공산주의자는 「인민」 의 관념을 발명한것이아니요, 단순히 「마르크시스트」 의 주장아래 계급투쟁의 보편변증법의 한끝으로 이것을 몇인치 옮겨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계급의 모순은 소련에서 더욱 드러나고 있다고「밀러」 는 말한다. 소련의 어느곳에 가든지 대형차가 지나갈 때 특히 휘장이 쳐진 경우 경찰관은 다가와서 인사하느것을 볼 수 있다. 더욱이 교통범칙이 일어났을때도 권력도이면 그대로 과료를 지불함이없이 사라지는 것을 볼수 있는것이다.
「모스크바」 에는 고응건물과 반듯한 도로들이 많이있다. 그러나 현대적 「디자인」 과 「알루미늄」 판밑에는 오늘날서방에서「모던」 이라고생각하는 것이 아닌 구식인느낌을주는 요소가있다.
도시의 거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시골에서 갓 올라온 농민이란얘긴가. 현대성 뿐아니라 소련의 도시자체가 채식된것이며, 서방의 문화를창조한 도시사람이 아직도 어기서 일하고있는것처럼 「밀러」 는 느꼈다고 기술했다. <하퍼즈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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