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시조의 날' 상 받는 박권숙 시인, 장경렬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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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1일은 ‘시조의 날’이다. 2006년 한국 현대시조 100주년을 맞아 제정했다. 시조의 앞날을 열어가자는 뜻에서다. 시조단은 이 날을 기념해 제1회 올해의 좋은 작품집상과 제2회 인산시조 평론상을 선정했다.

수상의 영예는 각각 박권숙 시조시인과 문학평론가 장경렬씨에게 돌아갔다. 시상식은 20일 서울 충무아트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불행은 나의 재산 … 시조는 나의 운명
‘올해의 좋은 작품집상’ 박권숙 시인

박권숙 시인

‘의지’라는 단어로는 한참 부족하다. 박권숙(51) 시조시인에게 생(生)은 ‘열망’이다. 우리가 잘 사는 것을 고민할 때, 그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의 새 시집 『모든 틈은 꽃핀다』(동학사)는 25년의 투병생활 끝에 그가 도달한 어떤 깨달음이다.

 이전에 발표한 시집들이 죽음의 자장 안에 있었다면, 제1회 올해의 좋은 작품집상을 수상한 새 시집은 생의 열기로 가득하다. 부산에 살고 있는 시인은 “매번 마지막 시집이라고 생각하고 시를 써왔다”며 “작은 틈일지라도 비집고 풀꽃들이 피어나는 것처럼 비극적 운명의 틈에서도 희망은 피어나는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였던 박 시인은 1987년 만성신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로부터 신장 이식을 받았지만 거부 반응이 오면서 기약 없는 혈액 투석의 길로 들어섰다.

 박 시인은 이 때를 “삶을 연명했던 시기”라고 표현한다. 병석에 누워 쓴 작품이 91년도 중앙시조백일장에 당선되지 않았다면 그의 삶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제가 시조를 선택한 게 아니라, 시조가 저를 찾아왔어요. 죽음의 공포에 분노하면서 무생물처럼 누워있을 때, 시조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 하나의 길이었습니다.”

 동생에게 다시 신장을 이식 받은 뒤, 합병증 때문에 투병생활을 계속하고 있지만 어쨌든 그는 살아남았고 시를 쓰고 있다.

 “박경리 선생이 ‘소설을 쓰기 위해 불행을 택할 순 없지만, 불행은 내 소설의 밑거름이었다’고 말한 것처럼, 불행은 나의 재산입니다. 머리를 굴리고 계산해서 쓴 시보다 제 고통에 귀 기울여 일필휘지로 썼던 시가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아요.”

 자신의 병고를 창작의 원동력으로 여길 정도로 그는 단단해졌다. 새 시집 전편에 운명을 받아들이고 초연해진 시인이 있는 것도 그런 연유다.

그는 ‘긴 병고 급경사 진 내 스물의 해안에도 (중략) 꺾인 뿔의 그루터기 봐라(‘나는 뿔이 그립다’)’라고 했다. 그의 삶이 압축된 ‘초승달 환상곡’의 한 대목도 이렇게 빛난다.

 ‘죽음을 붙들고 빛이 일어서는 법을/다시 숨을 부풀려 첫 발을 딛는 법을//새파란 실눈을 뜨고/가을밤이 보고 있다’

김효은 기자

영문학자가 시조 평론 … 우연이 필연됐죠
‘인산시조평론상’ 장경렬 교수

장경렬 교수

영문학자와 시조. 뭔가 어색한 조합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장경렬(61) 서울대 교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20여 년 넘게 시조의 의미와 현대성을 조명하는 평론을 써온 그가 20일 제2회 인산시조평론상을 받는다. 그의 시조론을 모은 『시간성의 시학』(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도 최근 출간됐다.

 시조는 그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만 세 살부터 여섯 살까지 충남 서산 외가댁에서 외할아버지께서 부르시던 시조창을 들으며 자랐다. 그렇지만 그의 삶에 시조가 성큼 걸어 들어온 건 우연이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89년 그는 대입 예비고사 출제위원이 됐다.

 “출제위원들은 한 달여 합숙을 하잖아요. 사실상 감금 상태인데 거기서 검토위원이었던 이우걸 시인(현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을 만났어요. 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시조 평론을 부탁하더군요.”

 그게 시작이었다. 평론 ‘시간성의 시학’은 그렇게 나왔다. 서구의 시가 시간을 초월해 의미를 갖는 상징을 강조한다면, 시조는 시간을 내면화한 알레고리(寓意)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 시조가 가진 시간성이 그의 화두가 됐다.

 “‘그대는 나의 태양’과 같은 상징은 어디서나 통하지만 자꾸 쓰면 낡아서 상투적이 되죠. 알레고리는 달라요. 인간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시대를 지나도 의미를 유지해요. 기승전결의 구조인 시조는 그 안에 시간을 품고 있고, 그래서 현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죠.”

 그렇지만 정형시라는 틀의 제약은 시조의 한계가 아닐까.

 “인간의 삶은 정형적이에요. 예의나 범절 등이 필요하잖아요. 시도 형식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문제는 정형을 가지고 장난하는 거에요. 글자 수만 맞추면 시조가 된다고 생각하는 낡은 모습이 문제인 거죠. 현대시 못지 않은 감수성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아요.”

 그는 “교과서에서 시조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한국문학이 진공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아닌 만큼 시조 등 우리 문학의 거대한 뿌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잊혀져 가는 시조에 숨을 불어넣는 그의 작업은 계속된다. 내년쯤에는 젊은 시조 시인을 다룬 시론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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