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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106> 서울의 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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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98년 5월 23일 경기도 팔당호에서 임창렬 경기도지사(왼쪽부터)·고건 서울시장·최기선 인천시장 후보는 수도권 상수도 수질 개선방안을 공동 공약으로 발표했다. 보트를 타고 잠수부들이 건져온 쓰레기를 살펴보고 있는 후보들. [사진 고건 전 총리]

1998년 ‘6·4 지방선거’를 열흘 앞둔 5월 23일. 새정치국민회의 서울시장 후보였던 나는 임창렬 경기도지사 후보, 최기선 인천시장 후보와 같이 경기도 팔당호를 찾았다. 구명조끼를 입고 두 후보와 나란히 작은 보트에 올라탔다. 잠수부들이 건져 올린 망을 살펴보니 쓰레기가 가득했다. 호수 주변에 음식점, 숙박업소가 즐비했다. 수도권 2000만 인구의 상수원인 팔당호의 수질은 걱정스러운 수준이었다. 2급수 기준을 간신히 충족했고 그대로 뒀다가는 3급수로 추락할 판이었다.

 그날 현장에서 두 후보와 함께 ‘수도권 상수도 수질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한강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상·하류 지역에서 함께 감시하자. 수질을 개선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공동으로 부담하자’는 내용이었다.

 한강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시민의 생명선이었다. 나는 97년 국무총리로 일할 때 ‘한강 환경 감시대’를 상설 조직으로 만들어 운용할 만큼 한강의 수질에 관심이 많았다. 지역 유지들의 외압을 막아 가며 한강 상수원에 있는 가두리 양식장을 모두 걷어 올리는 조치를 강행하기도 했다.

 한강의 수질이 더 이상 나빠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는 ‘공약 중의 공약’으로 수질을 꼽았다. 한강의 수질 개선은 서울시의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상류와 하류 지역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정부가 그동안 한강 수질 개선 대책을 여러 차례 발표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비용 부담 등 실행 방안을 두고 상류와 하류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강 상류를 깨끗하게 유지하려면 음식점, 숙박업소, 축산시설, 공장 등이 들어서지 못하게 해야 한다. 강변 땅을 소유한 사람들의 재산권 행사가 제한되기 때문에 보상이 필요하다. 하수 처리 시설을 만드는 데도 돈이 들어간다. 상류가 깨끗해지면 하류에 있는 사람들도 혜택을 보는 만큼 비용을 공동 부담하는 게 옳았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물값을 더 받겠다는 인기 없는 정책을 내걸었다.

 지자체가 함께 협력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추였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는 바쁜 유세 일정 속에서도 경기도·인천시의 두 후보를 불러모아 팔당호 현장에서 공약을 발표한 이유였다.

 그해 7월 1일 서울시장으로 취임했다. 시민에게 공약한 일을 서둘러 실천했다. 경기도·인천시·강원도·충북도 등 한강 수계 시·도와 같이 머리를 맞댔다. 9월 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수도권행정협의회가 열렸다. 나는 여기서 임창렬 경기지사, 최기선 인천시장, 김진선 강원지사, 이원종 충북지사와 함께 ‘한강수계관리위원회’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우리는 위원회를 통해 물 관리 대책을 함께 마련하고 수질 개선에 필요한 비용을 공동 부담하겠다고 중앙정부에 제안했다. 한강이 지나가는 5개 시·도와 환경부, 한국수자원공사 등이 참여하는 한강수계관리위원회가 99년 정식 기구로 설치됐다.

 서울·인천시민과 경기도민이 내고 있는 물이용부담금은 여기서 출발했다. 물이용부담금을 재원으로 하는 수계관리기금은 99년부터 2012년까지 4조원 넘게 쌓였고 한강의 수질을 개선하는 데 투자됐다. 물이용부담금 제도는 2002년부터 낙동강 등 다른 수계 지역으로도 확대 시행됐다.

 팔당 하류에서 상수도 수원으로 제일 깨끗한 곳은 모래·자갈층이 발달한 덕소 부근이다. 서울시는 이곳에 1일 200만t 용량의 강북 정수장을 건설했고 그 대신 선유도 정수장은 퇴역시켰다. 이곳은 2002년 4월 ‘선유도 물의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그 앞에는 세계 최고 높이의 한강 분수대가 설치됐다.

 한강의 수질은 수계관리 이전보다 나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깨끗한 한강을 만들려면 서울 상·하류 지자체와 주민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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