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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문화협회회장의 박근혜 대통령정상회담 수행기

중앙일보

입력

1.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나는 뜻밖에도 6월 중순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부터 6월 27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될 한중정상회담 수행단의 일원으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정상회담을 수행하는 한편 그간 중국의 대외문화교류협회와 한중문화협회 간에 협의된 MOU체결을 이번 베이징 방문길에 하자고 중국 측과 교섭, 6월 27일 하오 3시에 서명식을 갖기로 하고 베이징을 향해 오전 중에 김포공항을 출발했다. 이날 베이징 날씨치고는 너무 맑고 화창했다. 중국대외문화교류협회가 있는 중국 文化部 청사로 가면서 천안문 광장을 지나는데 대한민국 태극기와 중국의 오성홍기가 나란히 천안문 광장 사방에 줄줄이 세워져 있는 석탑 깃봉마다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중국인민대회당의 동문 쪽에서 바라보면 천안문에 걸려있는 모택동 주석의 바로 코밑에서 태극기와 오성홍기가 펄럭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나는 중국의 베이징을 그토록 많이 다녔지만 천안문 광장에서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역사는 모택동 시대가 아닌 시진핑(習近平) 시대이며 가난한 한국이 아닌 세계랭킹 10위를 넘나드는 국가반열에 오른 한국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았다.

2. 이번 정상회담에서 들어난 특징

이번 정상회담의 특징을 요약한다면 양측이 이번 정상회담을 성공시켜 한중관계를 새 차원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가 그 어느 때 보다도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박대통령이 중국영도들과의 대화를 잘 풀어가기 위해 필요한 요소마다에 합당한 중국의 故事成語, 論語나 諸子百家, 三國志등에 담긴 명언들을 사전에 잘 준비한 점도 눈에 두드러졌지만 그보다는 한중간에 나누어야 할 의제를 아무 구애 받음 없이 소신껏 논의했다는 사실이다.

중국 측도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과거와는 달리 한국 측에 마음을 열고 한국이 제기하고자하는 모든 의제를 폭넓게 수용함과 동시에 박 대통령의 방문을 최상의 국빈으로 대우하였다. 이러한 접대는 박대통령이 한중협력을 중시하고 중국을 심도 있게 연구했으며 박대통령이 걸어온 험난하고 기구한 인생사도 중국인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때문인 것 같다. 중국어로 번역 출판된 박대통령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킨다”가 중국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이를 입증한다.

또 중국은 과거와는 달리 국빈만찬을 인민대회당의 3층에 위치한 금색대청에 마련, 박대통령을 최상의 국빈으로 예우했다. 덕분에 수행원들의 격도 높아졌고 전체 분위기는 이 자리에 초청받았다는 사실자체에서 크게 긍지를 느낄 정도였다. 이날 만찬의 식간 행사에서는 박대통령이 좋아한다는 삼국지의 영웅 상산 조자룡을 등장시켜 장판파에서 적장 8명을 물리치면서 유비의 아들을 구해내는 경극을 문화공연으로 준비하는 등 중국 측이 박대통령의 환영무대를 치밀하게 준비한 것도 돋보였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는 박대통령이 중국의 시진핑 주석에게 한반도 통일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면서 중국이 한반도 평화통일의 동반자가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제안하고 북한 핵은 어느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음을 공개적으로 논의, 호응을 얻어낸 점이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중국이 껄끄럽게 생각할 문제를 박대통령만큼 당당히 제기하지 못했다. 지난날엔 중국이 사전에 의제에서 배제하거나 상대방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문제를 회피하는 정상대화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통일문제, 핵문제, 동북공정문제, 탈북자 문제, 심지어 안중근 의사의 標識石을 하얼빈 역에 새기자는 문제까지를 중국 측에 내놓고 당당히 제기한 점에 큰 방점을 찍지 않을 수 없다.

국내언론이나 외신보도는 공동합의문을 중심으로 성과를 분석하면서 북핵문제에 관하여 기존의 양측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고 평가하지만 정상회담의 진행과정을 보면 중국은 문서보다는 마음과 행동으로 박대통령의 제안과 주장을 대체로 수용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북 핵 불용 입장을 한국 측 주장으로 공동합의문에 포함시킨 자체가 큰 진전이 아닐 수 없다. 6자회담을 새로 추진하자고 제안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문서로서는 북한을 자극할 표현을 억제했지만 회담에서 들어난 분위기나 행동에서 보면 박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특히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박대통령 앞에서 북 핵 불용입장을 공공연히 밝혔다. 중국학자들이나 언론은 공산당 중앙영도들의 태도가 바뀌면 그와 때를 같이하여 기왕의 주장을 뒤집고 영도들의 입장에 따르도록 훈련되어 있음을 나는 잘 안다.

박대통령은 또 칭화대학 연설에서 한반도가 동북아시아 긴장의 진원지로 방치되어서는 어느 나라에도 이익이 될 수 없다면서 북한의 핵을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면 동북아시아가 21세기 세계경제발전의 새로운 견인차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요즈음 북한이 핵보유와 경제발전을 병행 발전시킨다는 이른바 핵ㆍ경제 竝進論이 어불성설임을 지적하였다. 박대통령의 연설은 칭화대학 학생들을 상대로 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중국 전체인민을 상대로 한 중국어를 섞어 넣은 명연설이었다.

중국CCTV와 인민일보 등 전 중국매스컴이 연설내용을 상세히 보도했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은 기왕의 ①한반도 평화(不戰), ②북한 정권의 안정(不亂), ③비핵화(无核)라는 우선순위를 ①비핵화(无核), ②한반도 평화(不戰), ③북한정권안정(不亂)의 순으로 정책중점을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북한을 버리는 선택은 기대하기 힘들지만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촉구하는 압력은 앞으로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왜냐하면 북한에 핵이 있는 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될 수 없고 일본 핵무장의 구실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한중관계는 여전히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정의되지만 막연한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아니라 목적을 공유한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 즉 한반도의 통일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적을 공유하는 동반자관계로 전략적 동반자관계의 내용을 구체화시켰다는 것이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것이다.

3. 김정일 방중과 비교

김정일은 1984년 중국을 방문, 등소평을 접견하면서 1시간 동안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설명 듣고 현지를 답사하고 돌아온 후 개혁개방을 추진한다고 合營法 등 개혁개방 관련 14개 법안을 마련, 최고인민회의를 통과시키고 나진선봉지구에 개방특구를 세우는 등 노선전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김일성과 김정일은 북한세습체제유지에 부담이 될 사상오염을 경계한 나머지 개혁개방을 사실상 포기하고 그나마 시행될 것처럼 보이던 나진선봉지구도 극단적인 통제와 간섭으로 외국 투자자들이 투자를 포기함으로 해서 실패했다. 2002년 다시 신의주에 마련하려고 했던 특구는 중국이 자국 동북지방의 개발에 부담이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신의주특구 행정장관으로 임명된 중국인 양빈을 구속시킴으로써 계획자체가 와해되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부터 집권했지만 한중수교에 불만을 품고 중국과의 관계를 사실상 단정했다가 1999년부터 북ㆍ중 관계를 재개한 후 2001년부터 4회에 걸쳐 중국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중국외교부 초청이 아닌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가 주선한 비공식 방문이었기 때문에 방문 사실자체가 항상 공개되지 않았고 그의 여행 일정은 하나같이 비밀에 쌓였다. 따라서 2000년대에 들어와서 김정일은 네 차례나 베이징과 중국의 몇 개 도시를 방문했지만 천안문 광장에 한번도 인공기와 오성홍기가 계양된 일이 없었고 더욱이 전체 중국인민들을 상대로 하는 대중 강연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중국공산당 영도들과의 비공개 접촉과대화가 있었을 뿐이다. 이번에도 박대통령은 취임 4개월 만에 중국을 국빈 방문 했지만 김정일을 승계한 김정은은 아직도 중국방문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4. 결론

한중관계는 변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부터 “가재는 게 편”이라는 俗言에 순치되어 중국은 항상 북한 편이라는 편견을 버릴 때가 되었다. 중국이 개혁개방 35년을 경과하면서 한중간에 놓여있는 체제차이는 거의 줄어들었다. 북한을 보는 중국의 관점도 바뀌고 있음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하여 사실로 증명되었다. 문제는 앞으로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다루어 나가는가에 따라 우리가 원하는 통일도 달성할 수 있고 지속적인 평화도 누릴 수 있다. 정부수준에서는 한중 FTA도 느긋한 자세로 추진하면서 양국이 윈윈 할 수 있는 협상으로 매듭지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한중간에 진행된 모든 대화는 우리 우방들인 미국에게 정확히 알려 의심받는 일이 없어야 하며 일본과의 관계도 매끄럽게 풀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인민의 마음을 한국을 지지하도록 끌어드리는 노력에서 큰 성과를 얻어야 한다. 최근 중국정치에서도 여론의 역할이 한층 더 중요해지고 있다. 지난 5월 19일 북한함정들이 중국어선을 나포하여 엄청난 몸값을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네티즌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북한을 배은망덕하다고 질타하였다. 이 사태에 당황한 북한 대사는 본국에 急電을 쳐서 9일 만에 중국 어부들을 석방시켰다.

中國 古史에 인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 천하를 잡는 법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와 있는 8만 명의 중국유학생에 대한 우리들의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가. 중국국적을 가진 40만의 노동자들을 우리가 따뜻하게 대해주고 있는가를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정부 대 정부수준의 외교와 함께 당 대 당, 국회 대 국회, 인민 대 인민수준의 외교가 보다 더 진지하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한중문화협회는 중국유학생들을 독립기념관을 참관케하고 분단국으로서의 한국현실을 이해시키는 특강과 아울러 한국의 주요산업을 시찰할 기회를 부여하는 Ko-China Project를 지난 2년 동안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또 중국노동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협회부설 인권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또 최근에는 한국정전협정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한국전 참전 중국 인민의용군 노병 3인을 초청, 파주에 있는 중공군 묘지를 참배케 함으로써 불행했던 과거사를 마음속으로 지워버리면서 한중 간의 새 시대를 만들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비록 NGO로서의 한중문화협회의 역할은 크지 않지만 지향만은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한국인들의 우정을 심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많은 성원을 기대한다.

한중문화협회 회장 이 영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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