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정쟁 증폭하는 국정원 정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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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가정보원의 원훈은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無名)의 헌신’이다. 요즘 같아선 ‘정쟁을 불사하는 허명(虛名)에의 몰두’ 같다. 연일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서다.

 국정원은 그제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는 내용의 대변인 성명까지 냈다. 국정원은 “회의록 내용은 남북 정상이 수차례 NLL과 북한이 주장하는 소위 ‘서해 해상 군사경계선’ 사이 수역에서 쌍방 군대를 철수시키고 이 수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한다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이는 육지에서 현재의 휴전선에 배치된 우리 군대를 수원-양양선 이남으로 철수시키고 휴전선과 수원-양양선 사이를 남북공동관리지역으로 만든다면 휴전선 포기가 분명한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NLL에 대한 부적절한 인식을 드러냈으나 직접적으로 NLL을 포기하거나 양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국민 다수도 같은 생각이다.

 국정원은 지난달 말 회의록을 공개해 정국을 달아오르게 한 데 이어 이번엔 국가 정상의 발언까지 자의적으로 해석했고 ‘대변인 성명’이란 형태로 공표 했다. “논란이 증폭돼 밝힌다”지만 오히려 더 시끄러워졌다. 국정원이 ‘정쟁 증폭기’ 노릇을 한 셈이다.

 오죽하면 여당에서도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 서야 할 국정원이 NLL 포기가 맞다는 북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사실상 이적 행위를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야당은 남재준 국정원장을 세 번째 검찰에 고발했다. 또 노무현 정부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간여했고, 현 정부에서 외교안보 라인으로 일하고 있는 인사(김장수·윤병세·김관진)들을 향해 “진실을 밝히라”고 공개 요구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 무슨 블랙코미디 같은 일인가. 이런 정쟁을 불러일으켜서야 국가정보기관이라고 할 수 있나. 이래서야 “정치개입 등의 문제가 없도록 자체 개혁을 하겠다”는 국정원의 말을 누가 믿겠나.

 국정원의 근래 행태에서 다시금 외부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기밀·보안 관련 업무를 한다는 이유로 헐거워진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여당도 적극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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