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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금융소비자 기구' 독립이 능사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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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범식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

최근 ‘금융감독체계 선진화 TF’가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안을 발표한 이후 금융소비자보호원의 신설 여부가 핵심 화두로 부각됐다. 사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 각국에서도 다각적으로 금융소비자 보호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접근 방식은 다양하다. 다만 공통점은 거시적인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큰 틀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다.

 이번 개편 방안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금융소비자 보호 문제와 금융감독체계 개편 문제가 혼재돼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금융소비자와 감독기구 못지않게 감독체계 개편의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금융회사의 규제 부담에 대한 고려가 빠진 것은 큰 문제다.

 검사·제재권을 가진 금융소비자 보호기구의 독립은 별도의 금융감독원을 신설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이 영업행위 감독과 밀착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금감원 내부 기구인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분리하는 것은 사실상 쌍봉형(雙峰型) 감독체제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쌍봉형 감독체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중복 규제다. 건전성 규제와 영업행위 감독은 개념적으로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분이 쉽지 않다. 통합 금융감독체계를 쌍봉형으로 전환한 영국이 여전히 고민하는 문제다. 무려 5년이 넘는 검토 작업과 1년간의 모의감독실험 끝에 올해 4월 발효된 금융서비스법은 전문 90쪽을 중복 규제 방지에 할애했지만, 감독체계 개편 실험이 언제 끝날지는 아직 모른다.

 금융위기 이후 신설된 미국의 금융소비자보호청(CFPB)은 신용카드·현금카드 및 개인주택대출 모기지 등 소비자금융에 대한 감독을 직접 수행하는 권역별 감독기구다. 쌍봉형 감독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도 사실은 건전성 감독을 권역별로 구분하고 있다. 영국의 영업행위감독원(FCA)도 모든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영업행위를 감독하되 건전성감독원(PRA)의 감독 대상인 은행·보험·대형투자은행을 제외한 투자회사·자산운용사·여신전문회사 등에 대한 건전성 감독을 관장한다. 또 금융소비자 보호기관인 민원분쟁처리기구(FOS)와 금융교육기구(MAS)를 영업행위감독원(FCA)의 산하기구로 두고 있다. 금융산업 전체를 보는 시각이 없이 소비자 보호에만 치중한 독립 감독기구가 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체제의 개편은 금융정책과 금융 감독의 분리, 국내금융과 국제금융의 통합 등이 총체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이러한 금융감독체제 개편은 필연적으로 정부조직 개편을 수반한다. 출범 때부터 정부조직 개편으로 홍역을 치른 새 정부가 또다시 개편을 단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TF팀은 이 때문에 정부직 개편이 수반되는 감독체계 개편을 중장기과제로 넘기고 현 감독체계 내에서 현실적인 차선책을 제시한 것 같다.

 그렇다면 차제에 본격적인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되 과도기적으로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할 수 있는 단기 처방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인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안은 여야가 공감하는 전문가로 구성된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에서 마련토록 하고, 개편안이 마련될 때까지는 총리실이나 금융위원회 산하에 금융소비자 보호를 다루는 독립적인 금융감독평가위원회(가칭)를 구성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에는 엄청난 규제비용과 사회적 파장이 따른다. 검증되지 않은 감독체계를 무작정 실험해볼 수 없는 이유다. 섣불리 금융감독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분리하면 규제의 효과는 거두지 못하면서 중복 규제의 부담만 키울 우려가 크다.

장범식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