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저임금 줄 바엔 제발 망하라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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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윤호
논설위원

“제발 최저임금 동결해 주세요. 대한민국 자영업자들, 중소기업들 모두 자빠집니다.”

 “최저임금 올리면 망할 것같이 엄살 떠는 자영업자님들 제발 망하세요. 그것도 쫄딱.”

 최저임금위원회 홈페이지에 떠 있는 글들이다. 이보다 자극적인 것도 적잖다. 웬만큼 먹고살게 확 올리라는 쪽과 그에 반대하는 쪽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결국 임금을 받는 쪽이냐, 주는 쪽이냐의 입장 차이다.

 노사의 그런 대립은 이듬해의 최저임금을 정하는 매년 6월 최고조로 치닫는다. 올해도 서울 논현동의 최저임금위 사무실 주변엔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계의 시위가 잇따랐다. 또 지난 5일 최종 표결엔 노와 사를 대표하는 위원들이 대다수 기권했다. 양쪽 다 불만스럽다는 반응이다. 이런 패턴이 되풀이되다 보니 최저임금위는 어느 새 재방송 전문 채널이 돼버렸다.

 그렇게 정해진 2014년도 최저임금은 시급 5210원. 주 40시간 일하면 월 108만8890원, 연간으론 1306만6680원이다. 올해보다 7.2% 올랐지만 결코 넉넉하진 않다. 내가 이 돈으로 생계를 꾸려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누구나 노동계 편을 들 것이다. 사측은 피도 눈물도 없는 스크루지인가 하며 규탄할 것이다. 반면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사장님이 돼 보라. 인건비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이 판에 최저임금 더 올리면 허약한 업체들부터 주르륵 망해 일자리도 줄어든다.

 도대체 어느 게 맞는 말일까. 가슴으론 노측, 머리론 사측에 끌린다. 사실 이는 누가 옳다고 가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학계에서도 어느 한쪽이 KO승을 거두진 못했다. 1992년 미국에선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뉴저지주의 일자리가 가장 낮은 이웃 펜실베이니아주보다 더 늘었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그 뒤 이를 뒤집는 연구가 나오고, 그게 다시 뒤집히기도 했다.

 학자들도 팽팽하게 갈리는 판에 노사에 의견일치를 기대하긴 영 글러 보인다. 다만 몇 가지 오해는 풀고 갈 필요가 있다. 내년에도 재방송될 최저임금 협상에 조금이나마 변화를 주려면 말이다.

 우선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는 모두 빈곤층이라는 주장을 보자. 최저임금 인상론의 강력한 근거지만 사실과는 좀 다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국내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 중 빈곤층은 약 35%다. 그 외엔 빈곤층보다는 형편이 나은 저소득층이나 그 위의 중산층이다. 따라서 빈곤층을 돕자며 무작정 최저임금을 올리면 그 혜택이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흘러가는 셈이다.

 배에 기름기 낀 자본가가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뿐인 근로자를 최저임금으로 착취한다는 인식 또한 오해다. 잘나가는 대기업은 최저임금을 올려도 흡수할 수 있다. 문제는 훅 불면 쓰러질 듯한 영세업체들이다. 역시 KDI에 따르면 최저임금도 못 받는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종업원 5명 미만의 영세사업장에서 일한다. 이들에게 임금을 올리라면 문 닫거나 값싼 외국인 근로자를 쓸 수밖에 없다. 그 정도 능력도 없으면 차라리 문 닫으라 하는 악담은 하지 말기 바란다. 별로 좋은 일자리는 아니지만 그나마 줄어들면 누구 손해인가.

 최저임금 인상이 모두에게 정의롭다는 생각도 다소 일방적이다. 약자 보호라는 대의를 최저임금이 다 실현해 줄 수는 없다. 목욕탕에 온수를 더 틀면 탕 속에 이미 빽빽이 들어앉은 이들은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빈자리를 기다리며 싸늘한 바깥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이들은 뭔가. 그들은 찬물 더운물 가릴 형편이 아니다. 최저임금을 잘못 건드리면 온탕의 안과 밖의 차이를 더 키운다.

 그런 면에서 최저임금에 대한 오해들은 모종의 이해관계에서 나온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시카고대 교수는 “노조가 높은 최저임금을 주장하는 이유는 저임 비노조원들과의 경쟁 압력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저임금 협상 때마다 뻔한 재방송을 봐야 하는 이유도 이 말에 담겨 있지 않을까.  

남윤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