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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이 문제] 아산 엘리트 체육의 현주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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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때부터 야구를 해왔던 조태원(15?가명)군.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며 열심히 노력해왔지만 이제는 운동을 그만둬야 할 위기에 놓여있다. 관내 고등학교에 야구부가 없어 타 지역으로 가야 하지만 조군을 원하는 학교는 현재까지 나타나질 않고 있다. 입단테스트를 봐도 “너 같은 선수는 우리 지역에도 많다”라는 답변만 들을 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내 온양고등학교에 야구부가 신설된다는 희망을 안고 있었지만 이마저도 지난달 완전 무산됐다. 조군은 “온양고등학교에 야구부가 설립된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를 잔뜩 하고 있었는데 무산돼 아쉬울 따름”이라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친구들이 선수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 가정형편이 어려운 이우형(15?가명)군은 축구국가대표가 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최종목표다. 아산 음봉면에서 부모님과 4남매와 함께 거주중인 이군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장학재단에 일부 지원을 등에 업고 축구를 시작했다. 미드필더를 맡고 있는 이군은 월등한 실력을 뽑내며 타 지역 여러 학교의 스카우트 대상이 됐다. 하지만 이군은 아산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가족과 떨어져 있기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운동을 포기 하지 않는 이상 아산에 남아있기는 사실상 힘든 상황이다. 이군은 “관내 고등학교 중단 한 곳이라도 축구부가 있다면 내 지역에서 계속 꿈을 키워나갈 수 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한다는 현실 때문에 슬프다”라며 “하루빨리 아산에도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 강화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아산지역에 고등학교 엘리트 체육이 활성화 되지 않아 중학교 때까지 운동선수로 뛰던 학생들이 자칫 운동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아산 관내 고등학교는 총 8곳(국립 6, 사립 2)이 있다. 이중 엘리트 육성반(운동부)을 운영하는 곳은 단 5곳뿐. 이마저도 온양여고 농구부를 제외하면 구기 종목은 하키부만을 운영하고 있다. 아산 하키는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지난달 열린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에서는 아산 중·고교, 아산 한올고 등이 좋은 성적을 거두며 전통의 강호임을 입증했다. 도민체육대회에서도 꾸준히 우승했다.

야구부나 축구부는 아예 전무한 상황이다. 특히 야구부의 경우 온양온천초와 온양중에서 야구부를 운영하고 있어 선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반해 고등학교에는 단 한 곳도 야구부가 마련돼 있지 않아 야구를 포기하는 학생이 매년 늘고 있다.

야구부 창설 눈 앞에서 ‘무산’… 학생들에 실망감 안겨

실제로 온양고등학교는 2013년 11월 창단 목표로 노력을 거듭해왔다. 아산 고등 야구부 창단의 필요성은 관내 온양온천초와 온양중 야구부가 30년의 오랜 전통을 갖고 있고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 학교로까지 꼽히고 있는데 서 비롯됐다. 지역의 우수 야구 인재가 타 지역으로 유출되는 문제점에 동감해 수년 전부터 논의돼 왔다. 온양고는 야구부 설립을 위해 꾸준히 아산시야구협회·연합회와 협의해왔다.

야구협회는 시와 교육지원청, 한국야구위원회, 온양고 관계자, 온양고 총동창회, 학부모대표 등을 만나 고등 야구부 창단의 당위성을 알렸다. 온양고 야구부 창단준비위원회를 구성해 구체적인 운영방안을 협의하는 등 올해 말 창단을 눈앞에 뒀었다. 협회는 시가 야구장 시설 및 지도자 급여를 지원하고, 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3년 동안 4억원의 창단지원금을 지원받는다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아산야구협회에서 매년 1억원씩 후원금을 지원하는 등 창단 후 3년간 학부모 회비를 타 학교의 30% 수준에도 안 되는 방안도 마련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일부 학부모, 동문 등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의 반발이 잇따르자 차선책으로 ‘찬반투표’를 진행, 결국 지난달 말 야구부 창단은 완전 무산됐다.

 이로 인해 온양고 야구부 창단을 기다렸던 온양중 야구부 졸업예정 학생들은 타 학교로 진학할 기회도 놓치며 기대만 안고 있다 어쩔 수 없이 타 지역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피해를 입게 됐다. 한기준 아산야구협회장은 “온양고 야구부 창단을 수년 동안 준비했는데 하루아침에 번복돼 당황스럽다”며 “아이들을 위한 일로 학부모들까지 참여토록 목소리를 높였는데, 아이들 볼 면목이 없어 죄책감이 크다”고 말했다.

강세 종목보다 고른 종목에 투자해야

축구와 배구 등 여러 구기 종목에서는 아예 운동부를 신설할 움직임 조차 없다. 배구의 경우 천도초등학교 학생들이 여러 차례 도민체육대회 초등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실력을 뽐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정상의 이유로 각 학교에서 운동부 신설을 꺼려하고 있다. 이에 초등학생 때부터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내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 축구의 경우도 각 학교마다 잔디구장이 마련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축구부 창설 계획을 갖고 있는 학교는 없다.

구기종목을 제외한 기초종목(유도·레슬링·육상)등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수영에만 집중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열린 도민체전에서 아산시는 수영에서만 금메달 20여 개를 휩쓸어 전통적인 강세 종목을 이어갔고 하키도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유도·볼링·레슬링 등에서 약세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는 다관왕종목에 대한 집중 투자보다는 고른 종목에 대한 투자와 선수 발굴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풀이된다.

 시 관계자는 “엘리트 체육 활성화를 위해서 선수발굴·육성, 훈련장소 확대, 지도자 처우개선 등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며 “체육종목 육성을 위해 시와 체육회는 종목별 문제점 검토 후 예산문제 등을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며 부진한 종목들도 각 단체별로 전략을 세우고 대책마련을 할 계획이다”이라고 밝혔다.

조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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