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관찰해 건강한 수정란 선별 … 자궁 착상률 크게 높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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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심영진 박사가 수정란의 부화 과정을 배양기 밖 모니터를 통해 관찰하고 있다. 길병원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프리모비전 시스템이다. [정심교 기자]

난임(難妊) 부부가 늘고 있다. 국내 난임 여성은 2004년 10만4000명에서 2011년 15만1000명으로 7년 새 50% 늘었다. 남성도 2만2000명에서 4만 명으로 역시 50% 가까이 증가했다. 원인은 자궁내막증과 같은 건강상 이유도 있지만 ‘원인불명’ 사례가 대부분이다. 5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난임 부부의 37.9%는 치료를 포기한다. 임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스스로 판단(60%)했거나 경제적인 부담(14%)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 난임 여성의 94.5%는 우울증상을 경험한다. 길병원은 최근 국내 최초로 ‘프리모비전 시스템’을 도입해 치료비 부담을 줄이고, 착상률을 높였다. 지난달 20일 아이바람(i-baram·주임교수 박종민) 이름으로 재출범한 길병원 여성전문센터를 찾았다.

채취한 난자, 모체 건강 회복까지 냉동 보관

여성전문센터 1층에 개소한 아이바람클리닉은 들어가는 배양실부터 범상치 않다. 내부의 무균 환경을 위해 양압 컨트롤 시스템을 적용했다. 오염된 공기가 외부에서 유입되지 않도록 배양실 기압을 외부보다 높게 설정했다.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흐르는 공기의 원리를 이용한 것. 난자 채취실로 통하는 문 위에는 ‘Ab Ovo usque ad Vitam’(난자로부터 생명으로)이라는 라틴어가 새겨져 있다. 박종민 교수는 “난자 채취 때부터 생명을 생각한다는 아이바람클리닉의 가치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곳에서 초음파 영상을 보며 난소로부터 난자가 들어있는 난포액을 채취한다.

난자 채취실에는 초음파 기계와 혈압·맥박 측정기가 놓여 있다. 예비 산모는 모니터를 통해 난포액이 채취되는 모습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난포액에는 10∼15개의 난자가 들어 있다. 연구원은 난포액을 얇은 카테터에 담아 ‘패스박스’라는 상자에 꽂아둔다. 패스박스의 온도는 엄마 체온과 비슷한 37도. 난자의 상태를 최상급으로 보관하는 온도다. 배양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생식의학연구소 심영진 박사가 현미경을 통해 난포액에서 난자만 뽑아낸다. 심 박사는 “배란 전 채취한 난자를 4~6시간 이내에 정자와 수정시켜야 가장 질 좋은 수정란이 된다”고 설명했다.

예비 산모는 난포를 키워야 하므로 난포자극 호르몬 주사(FSH)라는 별도의 주사를 맞아야 한다. 따라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이때 착상을 시도하면 임신율이 떨어질 수 있다. 심 박사는 “배아를 얼려 보관해뒀다가 엄마의 몸이 회복한 뒤 이식하면 임신율을 기존 38%에서 50%까지 더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젊고 건강할 때 난자를 보관했다가 향후 임신하고 싶은 여성을 위해 냉동보관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1년 보관료는 10만원으로 항암치료를 받는 여성 등이 대상이다.

실시간 단층 촬영해 수정 상태 전송

난자 채취 후 4~6시간 이내 난자와 정자를 섞어 배양기에 넣는다. 자연스럽게 수정되도록 하는 것이다. 수정률은 80% 안팎이다. 이때 배양기 안에 설치된 관찰카메라 6대가 실시간 수정란 상태를 찍어 모니터에 전송한다. 길병원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프리모비전(PRIMOvision) 풀시스템이다.

일반적으로 수정란은 하루 두 번 배양기에서 ‘외출’한다. 수정 상태를 관찰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수정란이 밖으로 나오면 엄마의 자궁과 다른 환경이 된다는 것. 심 박사는 “이 과정에서 수정란의 배양 환경이 미세하게나마 바뀌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프리모비전 풀시스템은 배양기에서 수정란을 꺼내지 않고 상태를 지켜볼 수 있는 장비다. 5분에서 60분 단위로 수정란 분화 과정이 모두 기록된다. 배아의 단층 촬영도 가능하다. 마치 자기공명영상촬영(MRI) 장치와 같다. 수정란을 단층으로 찍어 최대 12장까지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난자 채취 후 3~5일이 지나면 수정란은 8세포기~배반포기로 분열된다. 이 중 착상에 가장 적합한 수정란을 골라내 자궁에 이식하거나 얼려 보관한다. 심 박사는 “건강한 수정란을 24시간 모니터링해 선별하므로 착상률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바람클리닉은 레이저 보조 부화술도 도입했다. 동결 보존 후 질겨진 수정막을 일부 녹여 수정과 부화를 돕는다.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할 때 어미가 주둥이로 알을 깨주는 원리와 같다.

글, 사진=정심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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