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혁신학교 대못 박기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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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시내 67개 초·중·고교는 곽노현 전 교육감이 지정한 혁신학교다. 학교마다 1억~1억5000만원의 특별예산이 지원됐다. 그런데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가 교육감이 갖고 있는 혁신학교 지정 및 운영권한을 혁신학교위원회란 곳으로 이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서울 혁신학교 조례안을 어제 통과시켰다. 시의회는 오는 12일 본회의에서 조례안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교육위원회도 시의회도 모두 민주당이 다수여서 조례안의 통과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학교의 설립·지정 권한은 시·도 교육감에게 있다. 따라서 조례안은 상위법인 초중등교육법을 명백히 위반한다. 교육감이 갖고 있는 학교 지정·취소 권한을 교육 관련 시민단체 소속자, 시의회가 추천하는 사람 등 15명으로 구성된 혁신학교위원회에 넘겼기 때문이다. 또한 조례안은 초법적이기도 하다. 혁신학교들이 운영상 문제를 일으켜도 교육감은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교육감이 아무리 혁신학교 지정을 취소하려 해도 위원회의 심의를 받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교육감 머리 꼭대기 위에 위원회가 있어 혁신학교를 좌지우지할 판국이다.

 서울의 한 혁신고교는 연간 3000만원이 넘는 빵·피자 등을 간식비 명목으로 구입했다고 한다. 일반 학교는 학교 운영비가 줄어들어 찜통 교실에서 냉방도 못하고 있는데도 혁신학교는 돈만 축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시교육청이 현재 혁신학교 8곳에 대해 예산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감사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학교에 대못을 박으려는 시의회의 조례안은 불필요한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상위법과 마찰을 일으키고, 초법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조례안은 마땅히 부결 처리되어야 한다. 만일 시의회가 다수의 힘을 바탕으로 조례를 통과시킨다면 시교육청이 시의회에 재의를 요구해 조례가 시행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곽 전 교육감이 지정한 학교인 만큼 이 학교를 계속 운영할지, 아니면 지정 취소할지 결정도 후임 교육감이 하게 하는 게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