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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 정리의 각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부실기업정리방안의 윤곽이 밝혀졌다. 23개 기업으로 부실기업정리대상을 축소 시키고 이를 ⓛ지수강화 ②합병연합 ③공매 등 세가지로 구분정리하자는 것이 대책의 요지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23개 기업체는 총자산 4백61억원, 부채총액 4백64억윈으로 되어있어 부채초과액이 3억원으로 밝혀졌다. 또 자기자본 88억원에 누적적자가 91억원으로 자기자본을 다까먹고도 부채를 3억윈이나 더 까먹었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보면 23개 기업 중 자기자본을 완전히 까먹고 부채까지 일부 각식한 기업체가 실로 19개 기업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들 부실기업을 정부 및 사회적 자금으로 정리 또는 재생시키자는 것이 이번 정리방안이라고 하겠는데 그것이 과연 경제적인 기준에서 마련된 것이냐 다시한번 숙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째, 부실기업출현의 원인이 무엇인가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부실기업문제는 대상기업 23개 기업체만의 문제이기보다는 차관기업문제이고 거액융자기업문제인 것이다. 이들 차관 및 융자기업중에도 부실기업으로 등장할 기업이 상당히 잠재해 있는것이 거의 확실하다면 23개 기업의 정리보다는 잠재적이고 진행중인 부실기업의 부실화내지 도산을 방지하는 것이 국민경제적으로 보다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관을 얻을 때나 융자를 받을 때 일어나는 부정부패 또는 정치자금이 부실기업출현에 기여하는 바는 없으며, 기업가가 성산없는 사업계획을 가지고 차관·융자를 얻어 빼돌려 부실기업이 되는 경우는 없는가 등을 철저히 따지고 넘어가지 않는 한 부실기업은 계속 출현될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오늘날 금융계에서 들리는 바로는 지보행위, 융자행위가 날이 갈수록 압력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경향이 있어 실로 우려할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둘째, 융자의 투자전환, 저리융자의 강화 등으로 부실기업을 재생시키는 것이 경제적 합매성에 부합되는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연간 59억원의 금리를 부담했기 때문에 23개 기업이 부실기업이 된 것은 아니며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 금리부담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금리부담에 견디지 못했다는 것은 사업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며 결국 비경제적인 기업에 불과하다. 이들 기업에 금리부담을 면제해주어 재생시킨다면 그것은 경제적 재생이 아니라 정치적 재생이다.
다른 기업과 동등한 조건하에서 자립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재생인 것임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셋째, 합병연합만으로는 부실기업이 재생될 수 없다. 기업단위에 따르는 기술적 속성이 있기때문에 소기업을 합병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대기업이 되고, 능률화 되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의 합병연합은 역시 한 회사안에 두 기업이 공존하는 상태에 불과하다. 따라서 합병이나 연합으로 재생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할 것이다. 만일 합병이나 연합으로 부실기업이 재생될 수 있다면 그것은 독과점 형성이나 관세율조작에 따른 폭리를 허용하는 경우라 하겠는데 이것도 경제적인 재생일 수는 없다.
끝으로, 공채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총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이상 부실기업의 순자산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공매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금융기관융자의 일부를 금융기관이 포기하여 원매자를 창조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공채는 곧 지혜적인 방법으로 밖에는 실행할 수 없는 것이며 결국 사회적 자금의 특정인 귀속이라는 모순밖에 나는 것이 없다.
이와같이 본다면 이미 발생된 부실기업의 정리가 경제적 척도에서 합리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있다면 차관기업·거액융자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보아 현경영주로 하여금 자기의 전재산을 투입시켜 무한책임으로 재생시키도록 강요하는 것이 옳다. 이에 부응하는 경우 경제계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제도화시켜야할 것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것만이 부실기업의 연출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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