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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위도 모르게 FIU법 수정 … 법사위, 또 수퍼갑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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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강기정(민주당)=“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무위원들은 그럼 껍데기고….”

 ▶박영선(민주당)=“법사위원장으로서 점점 더 유명해지고 있는 박영선입니다. 상임위에서 위원님들이 열심히 논의하신 법이 법사위에서 고쳐지게 되면 속상하신 거 잘 이해합니다만….”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펼쳐진 이례적인 광경이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끼리 본회의장 마이크를 잡고 새누리당 의원들 앞에서 각각 소관 상임위원회를 대표해 설전을 벌인 것이다. 강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이며, 박 의원은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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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의원이 정무위를 대표해 공개적으로 법사위에 항의를 하게 된 까닭은 이른바 ‘FIU법’(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 때문이다.

 국세청이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자료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이 법안은 정무위원회 소관이다. 그런데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의결해 법사위로 넘긴 법안은 심사 과정에서 내용이 대폭 수정됐다. 그러자 “이런저런 내용을 타협안으로 넣어서 웃기는 짬뽕밥이 됐다. 문제가 있으면 정무위로 돌려 다시 볼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강 의원이 공개적으로 따지고 들었다. 그는 법사위를 ‘상원(上院)’ ‘수퍼 갑(甲)’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에 박영선 위원장은 "법안이 중구난방으로 가지 않기 위해 관계 부처의 의견 조회를 거쳐야 하는 게 저의 임무"라며 "법안이 두 세 곳에 걸쳐있어 해당 부처가 반대 의견을 낼 때 법사위에서 해당 부처의 의견을 들어서 수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법안은 여야 원내대표, 법사위원장, 법사위와 정무위 여야 간사, 관계부처 장관들이 협의해 그 합의대로 (법사위에서)가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법사위는 자구(字句)수정 외에도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는가, 위헌소지가 있는가, 형평의 원칙에 위배되는가를 살펴 3대 원칙에 위배될 경우 자구를 좀 벗어나서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법사위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도 “이 법안은 박영선 위원장이나 법사위 여야간사가 쿵짝쿵짝해서 통과시킨 게 아니다”며 “법사위는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사안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라고 거들었다.

 그러나 강 의원은 회의 후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무위에선 정보분석심의위원회에 검사는 참석할 수 없도록 했는데 법사위에선 검사·판사까지 집어넣는 등 법안의 주요한 내용을 3가지나 바꿨다”며 “정작 법안을 다룬 정무위원들은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기 직전에야 내용이 바뀐 줄 알았는데, 이런 경우가 어딨느냐”고 했다. 그는 “수정안의 내용도 모르고 투표를 해야 했었다”며 “‘날치기’가 따로 없다”고 흥분했다.

 한마디로 법사위가 ‘월권(越權)’을 했다는 얘기다. 지난 4월 국회에서도 환경노동위원회와 법사위 간에 비슷한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유해물질 배출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안이 법사위 심의 과정을 거치면서 처벌규정이 완화되자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은 ‘여야 환노위원 일동’의 명의로 보도자료를 내서 “법사위가 임의로 법률안의 내용을 바꾸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앞으로 법사위가 이런 행태를 반복할 경우 국회법을 개정해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한을 국회 법제실로 이관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법사위가 국회법상 규정된 체계·자구의 심사가 아닌 이번 개정안의 본질적 내용에 속하는 과징금의 규모 등에 대해 대폭 수정을 가해 소관 상임위 위원으로서 분노를 금치 않을 수 없다”면서다.

 모든 법안이 모이는 ‘터미널’인 법사위의 월권 논란은 19대 국회 이전에도 있었다. 김영선 전 한나라당 정무위원장은 2009년 2월 정무위에서 처리된 법안이 법사위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발목이 잡히면서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자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 의사를 무시한다면 이는 폭거이자 의회 체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반발했었다. 법사위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얽힌 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18대 국회 때 특허 소송에서 변리사가 소송대리를 할 수 있도록 한 변리사법 개정안은 지식경제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지만 법사위원들이 3년 넘게 논의를 끌다 결국 폐기시켰다.

 안 그래도 ‘상원’ 소리를 듣던 법사위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다.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과거엔 법사위에서 법안을 틀어막고 있으면 의장이 직권상정을 통해서라도 법안 처리가 가능했지만 직권상정 요건이 강화되면서 사실상 법사위의 권한이 강화됐다”고 말했다.

 명지대 윤종빈(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에 법률에 대한 기본적인 전문성이 없을 때 법사위가 필요했던 것인데, 현재는 각 상임위가 충분히 전문성을 갖추고 있음에도 법사위가 자구심사를 빌미로 내용까지 수정하는 건 옥상옥(屋上屋)”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어대 이정희(정치외교) 교수도 “이해관계에 얽힌 법안이나 상위법과 충돌하는 법안 등을 걸러내야 하는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법사위가 권력기관화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김경진·김경희 기자

알려왔습니다 위 기사에서 중앙일보는 FIU법(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에서 수정되자 정무위 소속 의원이 반발해 법사위의 월권(越權) 논란이 일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영선 법사위원장은 “FIU법은 정무위와 법사위의 공동소관 법률이고, 심사 과정에서 정무위 여야 간사, 원내대표 및 정부 부처 관계자가 참여해 수정된 것으로, 정무위 모르게 수정된 것도, 법사위의 월권도 아니고,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은 자구 정리 이상의 체계심사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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